이軍, 팔레스타인 청사 초토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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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시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청사를 초토화하고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 수반을 4일째 감금, 중동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지난 16, 17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들의 연이은 자살폭탄 공격으로 7명이 숨지자 20일 "모든 책임은 아라파트 수반에게 있다"며 탱크·불도저로 청사 건물 15개 동 중 14개 동을 파괴한 뒤 마지막 남은 아라파트 수반의 집무실 건물 10m 앞까지 진입했다.

이스라엘군은 이어 집무실 1·3층을 포격해 아라파트 수반을 2층에 고립시킨 뒤 "집무실 건물을 폭파할 것이니 전원 투항하라"고 요구했다. 아라파트 수반의 측근들은 "아라파트는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공격 목표는 아라파트 수반이 아니라 그가 숨겨온 테러용의자 2백여명"이라며 이들을 넘기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아라파트는 "그들을 넘겨주느니 순교자가 되겠다"며 버티고 있다. 아라파트는 지난 3월 말에도 이스라엘군에 30일 넘게 감금됐다.

◇왜 아라파트 공격하나=아라파트는 그동안 이스라엘의 집요한 공격으로 영향력을 크게 상실했다. 그의 '테러 중단' 지시는 하마스 등 과격 단체들에 먹혀들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아라파트를 물고 늘어지는 것은 아라파트가 이스라엘의 '테러와의 전쟁'의 가장 손쉬운 목표이기 때문이라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테러의 실제 핵심세력인 과격 단체들은 점조직으로 흩어져 있어 소탕하기 어렵다.

반면 팔레스타인 독립의 상징인 아라파트를 압박·추방하면 팔레스타인은 자치도시연합 수준으로 격하되고 과격 조직도 덩달아 약화돼 휴전 협상이 유리해진다고 아리엘 샤론 총리 등 이스라엘 강경파는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이라크 간 긴장으로 국제사회의 관심이 팔레스타인을 떠난 데다 지난 11일 팔레스타인 내각이 의회의 불신임 위협에 몰리자 전원 사퇴함으로써 아라파트가 최악의 위기에 처한 것도 공격의 결정적 배경이 됐다.

이같은 정세를 호기로 여긴 샤론 총리가 연쇄 자폭공격을 명분으로 다시 아라파트 목죄기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전망=이스라엘 온건파와 국제 여론 때문에 샤론 총리가 아라파트에게 신체적 위해(危害)를 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라파트가 위협에 못 이겨 스스로 물러나게 만드는 게 작전의 목표이기 때문에 포위는 장기화될 수 있다.

아라파트는 이번에도 국제 여론을 업고 버티기 작전을 쓸 것으로 보이나 이라크에 관심이 쏠린 국제사회가 미온적 반응을 보이는 데다 아라파트 본인의 내부 장악력도 급락해 있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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