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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중앙신인문학상]뒤통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4면

뒤 통 수

마름모꼴의 운동장을 걷고 있다

뾰족한 끝, 그 끝이 너무 아득해 아찔하다

초여름인데 난 내복 위에 반팔 소매의 빨간 티셔츠를 입고 있다

저 앞에 엄마와 여동생이 손을 잡고 가고 있다

참으로 다정해 보이는 모녀지간이다

난 운동장 밑바닥에 깔려있는 모래와 함께 서걱이며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맞잡을 손이 없다

운동장에선 포근한 지하실 냄새가 난다

그 냄새 사이로 스며들고 싶다

운동장 밑, 숨겨진 지하실로 주저앉고 싶다

한번도 뒤돌아보는 법 없는 엄마의 뒤통수

눈물로 얼룩진 희미한 그 뒤통수가 내 세상의 전부였다

난 한번도 세상의 앞모습을 본 적이 없다

엄마, 엄만 그 누구의 모진 뒤통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떨구었길래

그토록 막막한 당신의 뒤통수를 나에게까지 유전하는 건가요

엄마와 난 뿌리는 대로 소출할 수밖에 없는

깜깜한 흙 밭이라는 걸 몰랐나요

엄마 덕분에 내 뒤통수도 촉촉하게 젖어 있어요

뒤통수를 적시는 불쌍한 그 눈물들에 흠뻑 취해

미지근한 토사물 속에서 잠이 들어요

씹고 또 씹어 삼켜버린 엄마의 뒤통수는

내 피와 살이 되지 못한 채 토사물 속에 뒤섞여 서럽게 울어대고

울음소리에 깨버린 난 토사물과 함께 땅바닥에 들러붙는다

시간을 잃어버린 오래된 벽시계가 밤하늘에 걸려있다

난 나를 뒤로 한 채 초점 잃은 시계 바늘 위에 걸터앉아

내 뒤통수를 물고 날아가는 시간의 뒤통수에게 손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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