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라하고 슛만 하는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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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얼마전 밤에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 함께 갔다. 농구 연습 때문이었다. 체육시험을 슛을 9개 해서 몇 개 넣는지로 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깜짝 놀랐다. 자정이 다 돼가는데도 웬 아이들이 그렇게 많은지. 농구대가 5∼6개 있는데 빈 곳은 전혀 없이 줄을 서서 공을 던지고 있었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죽어라하고 슛만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농구라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 게임인데, 선수가 안될 바에야 슛은 들어가도 그만 안 들어가도 그만인데, 그저 즐겁게 놀고 몸도 튼튼해지면 그만인 것을 오로지 점수 때문에 저 고생을 하나 싶었다.

요즘에는 체육 과외를 받는 학생들도 있다고 한다. 좋은 대학 가려면 외고나 과학고 가는 게 유리하고 그렇다면 내신을 잘 받아야 하는데 영어나 수학은 차이가 나봐야 몇점 정도지만 슛을 잘못해서 체육에서 수십점씩 확 깎이면 '회복 불가능'이라는 것이다.

부동산 값이 서울 강남에서부터 불 붙은 여러 원인 중 하나가 '교육'이라고 한다. 유명학원도 많고 한마디로 교육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30평 아파트가 5억∼6억원씩 해도 오로지 '자녀를 위해 희생한다'는 각오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이런 현실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서울대가 전에 자체 조사를 해보았더니 지방 어느 도(道)의 경우 그 지역 고교출신 비율이 전체 재학생의 1% 남짓밖에 안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구비례로 보면 10%는 돼야 할텐데 턱없이 낮은 비율이었다.

며칠 전 정운찬 서울대 총장을 사석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지역 할당제는 어릴 때부터의 지론"이라며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은 뉴저지주에 있지만 뉴저지 출신은 일정 인원 이상 뽑지 않습니다. 대신 미국 50개주 전역에서 최소 몇 명씩은 입학하도록 배려합니다. 출신지역·배경이 다른 학생과 어울려야 배우는 게 많고 이해심도 높아지는 것 아닙니까."

모든 게 '점수'라는 잣대 하나로 평가되는 우리로선 생소하지만 참 일리있는 발상이구나 싶었다. 정총장은 그러면서 '결국 인재는 키우는 것'이라고 했다.

"고위 임원들이 K·S(경기고·서울대)출신 일색이었으나 망한 기업이 있는 반면 삼성은 지방대 출신이 많아도 잘만 나가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삼성그룹의 경우 올 신임 임원 중 지방대 출신이 40%였다. 삼성전자만 보면 신임 임원 56명 중 경북대 출신이 6명으로 가장 많다. 인하대가 서울대와 같은 5명, 부산대는 4명이다.

현재 전체 상장사 임원 중 서울대·연대·고대 등 이른바 '빅3'출신 비율은 46%다. 그런데 상장사 중에서도 일류라 할 4대그룹(삼성·LG·SK·현대차)의 올 신임 임원 중 이들 '빅3'출신은 35%로 비율이 훨씬 낮다. 그렇다고 이들 기업이 아무나 임원 시키는 것은 아니고 보면 학력이야말로 삼성·LG식 표현에 따르면 '단순 참고용'에 불과할 뿐이다. 최근 한 취업정보업체가 7백여 기업을 설문조사한 결과 업무능력에서 서울·지방대 출신간에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현재 서울대는 재적학생이 3만8천명이나 된다고 한다. 학생들이 몰린다고 정원을 늘릴 게 아니라 차제에 오히려 확 줄여서 인재들이 여러 대학에 골고루 가게 하는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업들도 "우리 회사엔 명문대 출신은 아예 원서도 안낸다"고 푸념만 할게 아니라 뽑은 뒤 훌륭한 일꾼으로 잘 키우는 데에 보람을 찾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학교와 사회가 함께 바뀌지 않는 한 아이들은 '죽어라하고 슛만 해야 하는 성적지상주의'에서 풀려나지 못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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