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씻고 사장 돼 고향 가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사장으로 변신한 모습을 하루라도 빨리 부모님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둔 18일 경기 군포공단 내 '푸르미 카센터'에서 기름때로 얼룩진 정비복을 입은 김대현(金大炫·22)씨는 이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金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집안 사람들이 모두 모이는 추석만 되면 오히려 마음 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소년원을 세 차례나 드나들면서 집안에서 완전히 내놓은 자식으로 취급받았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가 지난 4일 소년원에서 배운 정비기술로 카센터를 개업하면서 어엿한 사장님이 됐다. 서울소년창업보육원에서 시설투자비 1억원과 3백여평에 이르는 사무실을 임대받고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소년원 출신 2명을 직원으로 고용한 것이다.

金씨는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께 사장이 됐다는 소식을 전하자 믿지 않았다. 빨리 고향에 가서 집안 어른들께 당당히 인사도 드리고 자랑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카센터를 개업한 지 보름 남짓 됐지만 벌써 7백만∼8백만원의 매출이 올랐다. 다른 카센터보다 20∼30% 싸고 믿을 수 있는 정비를 한다는 소문이 나 고객이 늘고 있다. 추석 연휴가 끝나는대로 광고 전단지를 배포하는 등 주변 공단을 공략하겠다는 나름대로의 영업 전략을 세워 놓고 있다.

金씨는 1994년 고향인 경남 거제시의 한 수퍼에서 돈을 훔쳤다가 중학생이던 14세 때부터 소년원 생활을 시작했다. 5개월간 소년원 생활을 마치고 나왔지만 학교에 갈 수 없었고, 친구도 없었다. 결국 승용차를 훔쳐 몰고다니다 붙잡혀 15개월간의 소년원 신세를 다시 졌다. 그는 98년 또다시 18개월간의 소년원 보호처분을 받았다. 친구에게 주먹을 휘두른 것이다.

金씨는 당시를 "다시 상상하기도 싫다. 조그만 배로 고기를 잡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네 창피하다며 밖에 나가지도 않는다'는 말을 듣고 죽고만 싶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 때부터 소년원에서 실시하는 자동차 정비 직업교육에 매달렸다. 중1까지만 다닌 학력으로 살 길이라고는 기술을 배우는 것 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마침내 대전시 주최의 기능대회에 나가 동메달을 땄고 자동차 정비기능 3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金씨는 "내가 뭔가를 해냈다는 감격에 그날 밤엔 한잠도 못잤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소년원을 나오면서 자동차 정비기술로 새 생활을 하겠다는 꿈을 잠시 접어야 했다. 소년원생 출신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너무 강했다. 그렇지만 "소년원생 출신임을 숨기지 않고 정직하게 살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거제의 조선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면서도 틈틈이 공부해 자동차 정비기능 2급 자격증을 따낸 것도 이런 결심 때문에 가능했다. 마침내 지난 6월 서울소년창업보육원이 퇴원생에게 지원하는 창업자금을 받았고, 3개월간의 준비 끝에 '카센터 사장님'이라는 꿈을 이룬 것이다.

그는 "이번 추석에는 오랜만에 부모님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설렌다"고 말했다.

◇서울소년창업보육원=소년원생들이나 소년원 퇴원생들의 취업·창업 등을 체계적으로 지원해 이들의 사회정착을 돕기 위한 소년 보호행정 기관이다. 법무부가 중소기업청과 정보통신부에서 4억5천만원씩 지원받고 자체 예산 1억원을 들여 지난 6월 경기도 의왕시에 문을 열었다. 보육원생들이 교육희망서류나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20명으로 구성된 외부 전문위원들이 심사해 지원자를 결정한다.

지원자들에게 정보기술(IT)·자동차정비 관련 교육을 시키거나 창업을 도와준다. 창업지원 대상 1호가 김대현씨였다.

장정훈 기자

ccho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