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카戰 포항공대-카이스트 사이언스 워(Science War)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60면

포항공대의 해킹 연구 동아리 '플러스'와 카이스트(KAIST·한국과학기술원)의 동아리 '쿠스'는 한 치 양보없는 라이벌이었다. 지나친 경쟁의식에 사로잡힌 이들은 상대 학교의 컴퓨터 시스템을 수차례 해킹하며 실력을 자랑했다. 급기야 1996년에는 카이스트 학생이 포항공대 전산시스템에 침투, 각종 자료를 지운 사실이 발각됐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해킹 전쟁이었다. 이 사건으로 카이스트 학생들은 구속됐고, 해킹은 정보화 사회의 대표적인 역기능으로 인식됐다.

그로부터 6년. 국내 정보기술(IT) 최첨단 대학인 포항공대와 카이스트의 IT 전사 1천여명이 대전시 대덕 연구단지 내 카이스트 캠퍼스에 모였다. IT 챔피언을 가리기 위한 '사이언스 워(Science War)'를 치르기 위해서다. 하지만 과거와 달리 이기고 지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지난 13일 밤부터 14일 밤까지 대덕벌을 뜨겁게 달궜던 제1회 '포항공대-카이스트 사이언스 워'는 국내 IT산업의 미래를 짊어질 두 대학의 '우정의 잔치판'이었다. 전쟁을 굳이 밤에 벌인 것은 컴퓨터와 씨름하느라 밤샘이 생활화된 이들의 올빼미 기질을 고려한 때문이다.

두 학교 학생들은 이번 IT전쟁을 자발적으로 준비했다. 2년 전부터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논의를 했다. '고립된 IT영재'가 아닌 '세상과 협력하는 청년'이 되자는 취지였다. 학교 측의 전폭적인 지원이 함께 했다.

카이스트 홍창선 원장은 "이번 교류를 통해 양교 학생들은 이공계생들이 갖는 한계인 교류와 협력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사이언스 워의 첫 종목으로 해킹 대회를 택한 것은 양교간의 묵은 감정을 털자는 뜻이었다. 포항공대 정의근 총학생회장(컴퓨터공학 4년)은 "두 학교간 경쟁심의 뿌리였던 해킹 실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 화합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양측의 승부는 새벽까지 이어진 스타크래프트 게임 대회로 절정을 맞았다. 이 게임도 두 학교의 경쟁의식이 남다른 종목이다. 두 학교는 축제 때마다 게임을 벌여 승패를 가르곤 했다. 새벽에 열린 대회인데도 대강당에 1천1백여명의 학생들이 모여 열기를 뿜어냈다. 카이스트 안상현 총학생회장(물리학 4년)은 "그동안 쌓였던 반목의 뿌리를 걷어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다음날로 이어진 행사는 과학퀴즈 대회와 야구·축구 등의 친선게임으로 마무리됐다.1회 대회 우승은 스타크래프트 게임★ 등에서 좋은 점수를 얻은 카이스트. 학생들은 내년에는 포항공대 캠퍼스에서 만나기로 하고 아쉬운 무박2일의 축제를 마쳤다.

대덕=김종윤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