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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 오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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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인간의 얼굴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식별’과 ‘소통’이다. 너와 나, 우리를 구분하는 것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에서 생존하는 핵심 요소다. 그래서 지구상 68억 인구의 모습이 다 다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이 말없는 의사소통이다. 상대방이 적대적인지, 혹은 더불어 종족을 보존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한지 순식간에 파악해야 한다. 삭풍에도 불구하고 얼굴에 털이 없는 이유다.

얼굴은 눈썹부터 턱까지다. 좌우에 각각 22개씩의 근육이 있는데, 바로 안면근이다. 미세한 떨림까지 복합적 움직임으로 희로애락의 온갖 표정을 만든다. 미국 MIT의 연구 결과 얼굴은 약 100개의 부분에서 각각 100가지의 다양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천문학적인 경우의 수다. 주름살은 표정이 아니지만, 자체로 많은 함축정보를 전달한다.

이런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얼굴을 제대로 인식하기 힘들다. 어제 만난 사람이라도 자세가 다르면 인식률이 90%, 표정이 다르면 76%로 떨어진다고 한다. 자세와 표정을 모두 달리하면 60%다. 거의 기연가미연가 수준이다. 그래서 법원의 오심 가운데 적지 않은 수가 ‘목격자의 식별 오류’로 빚어진다고 한다.

현대엔 얼굴의 권력화가 지나치다. 스스로 드러내는 위험을 경계한 차도르나, 본모습을 감추기 위한 화장(化粧)의 교훈을 잊었다. 미인박복(美人薄福)이란 심오한 가르침도 소용없다. 장자(莊子)는 ‘조탁복박(彫琢復朴)’이라고 했다. 참 아름다움이란 새기고 쪼는 것보다 본디의 순박함으로 돌아가는 것이란 뜻이다. 그래서 인도와 네팔의 힌두교도는 이마에 ‘티카’를 붙인다. 심안(心眼)을 뜻하는 ‘제3의 눈’이다. 보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니라 ‘속이는 것’이란 지혜다.

얼굴의 ‘아이덴티티’를 극명하게 대비시킨 영화가 우위썬의 ‘페이스 오프’다. 성형수술로 얼굴이 바뀐 형사와 갱의 이야기다. ‘007 어나더데이’의 악당도 페이스 오프 수술을 한다. 그렇다고 마음까지 바뀌랴. ‘신상불여심상(身相不如心相)’이라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심취한 ‘관상학’이란 것도 어쩌면 선입견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사고로 얼굴을 잃은 스페인의 농부가 전면 안면성형 수술로 새 얼굴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페이스 오프’가 현실에서도 가능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탈을 쓴 인면수심(人面獸心)들을 어떻게 할까. 얼굴로는 모르겠으니, 이들을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페이스 오프’하는 방법은 없을까.

박종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