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달린 인생 되돌아 보게 해준 『꽃들에게 희망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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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나는 간혹 축구해설자를 요리사에 비유한다. 시청자가 원하는 맛있는 찌개를 끓이려면 반찬거리(방송거리)에 늘 신경쓰게 된다. 장소와 팀이 바뀌어도 11명씩의 선수들이 골을 향해 뛰는 불변의 상황을 놓고 같은 해설을 반복하곤 한다면 시청자들은 금방 채널을 돌릴 것이다. 때문에 실감나는 중계를 위해 항상 고민하게 되고, 가장 먼저 의지하게 되는 게 역시 책이다.

최근 가장 인상깊게 읽은 책은 『꽃들에게 희망을』(트리나 플러스 지음·하서)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생인 아들이 먼저 읽고 권해준 『꽃들에게…』는 그림책이다. 평범한 줄무늬 애벌레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에 눈이 멀어 사랑하는 노랑 애벌레를 떠나 다른 애벌레들이 열중하고 있는 기둥 오르기에 나서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줄무늬 애벌레는 부지런히 기어 올라 거의 기둥 꼭대기에 다다르지만, 다른 애벌레들보다 기둥을 빨리 올라가려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친구들을 짓밟거나 아래로 밀어 떨어뜨리게 만든 현실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애벌레들은 어떤 삶이 진정 가치있는 삶인지 따지지 않는다. 줄무늬 애벌레는 꼭대기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나비가 돼 날아올라야 한다는 사실도 깨닫는다. 그때부터 줄무늬 애벌레는 반대로 땅을 향해 내려가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아래로 내려가며 꼭대기로 기어 올라가는 애벌레들에게 경쟁, 상승의 무의미함을 거듭 설명하지만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다. 사랑했던 노랑 애벌레는 이미 나비가 돼 있다. 줄무늬 애벌레는 노랑 나비의 도움을 받아 나비로 태어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승리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생의 뒤편을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측면에서 신간은 값지다. 내적 변화와 성숙을 통한 자아실현의 아름다움도 보여준다.

대학선배인 숭실대 신광섭 교수가 중계방송에 도움이 될 거라며 선물한 『바디 워칭(BODY WATCHING)-신비로운 인체의 모든 것』(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범양사)은 서너차례나 읽은 애독서다. 생물학적인 인체 분석에서 시작, 운동 과정 중에 나타나는 자세나 표정 등 신체의 변화 등을 담은 과학적 안내서일 뿐 아니라 문신·보석 등 장식의 사용, 의류의 착용 등 문화적 고찰까지 포함하고 있다. 저자 모리스는 "인간의 신체를 가까이서 면밀히 조사하면 인간이라는 이름의 비상한 동물에 대한 경이감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축구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는 신체를 이용한 활동이다. 신체의 소리를 비롯 근육의 상태, 골격의 구조 등에 대한 이해를 통해 방송에도 많은 도움을 준 책이 바로 『바디 워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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