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부시 대통령이 12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밝힌 대(對)이라크 5개 요구사항은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당시 나온 유엔결의안의 휴전조건에 뿌리를 두고 있다.
91년 4월과 6월 미국·영국 주도로 마련됐던 유엔결의안(6백87·6백96조)의 골자는 ▶국경선 원상회복▶핵·생물·화학무기 등 대량 살상무기와 탄도 미사일의 제거▶원유 수출대금 중 일부를 쿠웨이트 전후 복구비로 장기간 배상▶테러지원 금지▶쿠르드족에 대한 탄압금지 등이다.
이날 유엔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이를 조목조목 언급하면서 "휴전조건 중 국경선 회복만 이뤄졌을 뿐 무엇이 제대로 이행됐느냐"고 되물었다. 여기엔 후세인 정권이 휴전조건을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문제삼아 향후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삼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부시는 이날 연설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나 알 카에다 문제보다 후세인 정권의 잔학상과 위험성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 5개 요구사항에는 과거 휴전조건보다 강도가 높을 뿐 아니라 새로운 조건까지 보태졌다.
둘째 조건인 '테러지원 중단'을 제외한 나머지는 사담 후세인이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위한 조건'이나 다름없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직전 탈레반정권에 '3일 내에 오사마 빈 라덴을 미국에 송환하라'는 요구조건과 같은 맥락인 셈이다.
특히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와 관련해 '대량살상무기 등을 무조건 공개하고 향후에도 공개할 것을 맹세하라'거나 '실종자의 행방을 설명할 것'과 같은 요구에 대해서는 미국 언론들까지 '감정적인 수사(修辭)'라고 표현했다. 또 외국과의 밀거래를 중지하고, 이라크 국민 다수인 시아파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는 것도 후세인 정권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대목이다.
워싱턴=이효준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