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경영력 두루 갖춘 '테크노 CEO'길러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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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7면

과학기술부에서 '올해의 테크노 CEO상'을 제정했다.이는 이공계 출신 CEO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1백 대 기업 CEO 중 36%, 코스닥 등록기업 CEO 중 50%가 테크노 CEO라고 한다. 미국 IRI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 기업의 45%, 유럽 기업의 49%가 테크노 CEO로 집계됐다. 테크노 CEO의 증가는 세계적인 추세인 듯하다.

왜 이처럼 테크노 CEO가 뜨고 것일까? 변화와 스피드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특히 의사결정의 스피드 시대로, 그 내용에 있어서도 기술적 전문성을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가 혁신의 시대로 들어선 것도 중요한 계기다.마이클 포터 교수의 국가경쟁력 발전 단계론에 따르면 우리 나라는 1980년대 투자주도형 시기의 성공에 안주한 채 90년대 혁신주도형 시기로 전환할 타이밍을 놓쳐 '잃어버린 10년'의 아픔을 겪게 됐다. 위기를 극복하고 혁신의 시대를 다시 열어 가려는 지금은 혁신주도 세력인 테크노 CEO의 등장은 당연하다.

혁신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는 기술부문의 역할도 이제는 R&D를 뛰어넘어 R&BD(Research & Business Development)까지 확대된 것도 또 하나의 이유다. 즉, 기술과 시장을 일체화시켜 고객 가치혁신을 주도하는 4세대 R&D의 시대가 된 것이다.R&BD의 시대에는 과학기술자들이 마케팅·재무 등의 경영지식을 갖춰야 한다. 많은 벤처기업이 뛰어난 기술력이 있음에도 쉽게 쓰러지는 원인이 경영능력의 부재에 있다. 기술력과 경영능력이 벤처기업 성공의 필수 요건이듯이 기술력과 경영능력은 21세기 CEO의 필수요건이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야후의 제리양, 인텔의 앤드루 그로브, GE의 잭웰치 등 테크노 CEO의 예는 수없이 많다. 이들은 기술에 대한 이해가 경영의 기초가 됐다.

대표적인 사례로 기술과 시장에 밝은 노키아의 요르마 올릴라 CEO는 기술과 규제가 급변하는 통신사업의 동향을 잘 안 덕에 노키아를 첨단정보통신 기업으로 탈바꿈시켜 취임 4년 만에 10배의 순익을 올렸다. 이처럼 세계는 이미 테크노 CEO가 활약하는 시대로 들어섰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첫째, 교육시스템의 총체적 개혁이 필요하다. 표준형 인재만 배출하는 주입식 교육은 혁신의 시대에는 적합지 않다. 이제는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 창의적 사고 능력, 기업가정신을 갖춘 인재 양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

둘째, 이공계 대학의 교육내용이 바뀌어야 한다. MIT에서는 공대 학생들은 경영대 과목을, 경영대 학생들은 공대 과목을, 과정의 3분의 1 가량 이수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경영능력을 갖춘 기술인, 기술 전문성을 갖춘 경영인을 양성키 위한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기술-사업 일체화 시대에 맞게 이공계 교육의 폭을 넓혀야 할 것이다.

셋째, 테크노 MBA 과정의 충실화이다. 1970~1980년대 고도성장기는 경험과 연륜으로 CEO가 되는 시대였다. 그러나 미래의 CEO는 체계적 교육을 통해 습득한 지식의 기초 위에서 합리적인 의사결정 능력을 갖춰야 한다. 테크노 MBA 과정이 테크노 CEO 양성의 모태가 되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가면 갈수록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더 높아지는 사회·경제가 될 것이다. 기술강국만이 세계 주도국이 된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경영과 기술을 이해하는 10만명의 기술자, 테크노 CEO 양성을 서둘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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