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농구 우승감독이 사표 쓴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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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여자프로농구 현대가 11일 박종천 감독의 사표를 수리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실은 곧 여자농구연맹(WKBL)을 비롯한 농구계 전체에 파장을 일으켰다. 남자농구 KCC 이지스 코치였던 박감독은 현대측 권유로 올 봄 여자농구 감독을 맡았고, 부임 세달 만에 우승을 이뤄냈다. 현대로선 창단 16년 만의 첫 우승이기도 했다. 우승팀 감독이 사표를 제출한 것은 남녀 프로농구를 통틀어 처음있는 일이다.

WKBL과 각 언론사에 보낸 보도자료에는 '…박종천 감독이 개인 사정으로 사표를 제출함에 따라 이를 접수하고…'라고 이유가 명시돼 있다. 사임 이유치고는 궁색하다. 박감독과 구단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자세한 이유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이날 고향인 전남 여천에 성묘를 다녀온 박감독은 "혼자만 열심히 해봐야 뭐하냐"는 말로 사퇴 이유를 압축했다. 우승 후 구단의 대우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구단이 과연 농구팀을 유지하려는 의지가 있느냐에 대해 회의를 가졌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구단측 설명을 들어보면 사정이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소속 기업인 현대건설이 채권단 관리상태여서 KCC 등에서 도와주는 자금도 일일이 채권단 결제를 받아 쓰는 형편에 어떻게 감독의 요구를 다 들어줄 수 있나."

주전 대부분이 주부선수들로 구성된 데다 제대로 된 훈련장도 없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 오로지 '우승 한번 해보자'는 정신으로 창단 후 첫 우승을 일궈낸 현대 여자농구팀. 그러나 기쁨도 잠시,우승 보너스는 고사하고 감독이 사퇴하는 모습은 현재 여자프로농구의 슬픈 자화상이다.

문병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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