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힘 시장을 바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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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출산율이 감소하면서 대부분의 가정이 자녀를 한두 명만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자녀를 위해서라면 돈을 아끼지 않는다. 제 자식만큼은 누구보다 예쁘고 귀하다는 '고슴도치형' 부모도 늘고 있다. 가정에서 뭘 사려고 해도 자녀의 뜻이 중요하다. 어린이도 어엿한 소비자 집단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기업들도 어린이들이 어떤 소비행태를 가지고 있는 지를 잘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

편집자

주부 박영주(37)씨가 살고 있는 분당에는 여러 개의 할인점이 있지만 朴씨 가족이 쇼핑하는 할인점은 하나로 정해져 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이 여섯 살 때 구입한 장난감이 인연이 됐다. 장난감 트럭에 어느 할인점의 로고가 찍혀 있었는데, 커서도 아들이 그 할인점만 가기를 고집하기 때문이다.

朴씨는 "장난감 때문에 특정 할인점의 브랜드가 확실하게 각인돼 다른 할인점을 싫어한다"고 말했다. 어린이를 고객으로 한 시장이 급속히 확대되면서 가정에서 제품을 구매할 때 어린이가 미치는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이는 제일기획이 최근 서울 시내 초등학생 2백명과 학부모 6백명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을 실시해 8일 발표한 '어린이시장 조사보고서'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 김익태 수석연구원은 "어린이의 소비행동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함으로써 마케팅 전략을 어떻게 펼칠 것인가를 제시했다는 데 이번 조사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커지는 어린이 영향력=조사에 따르면 어린이들의 한달 용돈은 평균 3만3천원이다. 이 돈으로 주로 과자 등 식음료와 문구·완구를 직접 산다. 실제로 21개 제품에 대한 어린이의 구매 영향력을 분석한 결과 게임CD·과자·음료수·완구 등에서는 어린이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

어린이들이 직접 물건을 사는 '직접시장'은 서울의 경우 연간 3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과외활동·컴퓨터·외식에서는 부모의 영향력이 크지만 어린이를 많이 고려한다. 에어컨·정수기·자동차 등 내구재 소비에서는 어린이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현재로선 내구재 구매결정에 있어 어린이들의 영향력이 크지 않지만 앞으로는 어린이가 영향을 미치는 제품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라며 "어린이가 관련되는 시장이 크게 팽창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어린이들의 의사가 구매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는 것은 출산율 저하 등 사회적 변화와 함께 쇼핑문화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조사에 따르면 어린이 세명 중 두명 정도는 특정 제품을 사달라고 부모를 조른 경험이 있고, 절반 정도의 부모가 제품을 사준다고 답했다. 또 59.2%가 일주일에 평균 1회 자녀를 동반해 쇼핑을 하며, 일주일에 2~3회 쇼핑을 한다는 응답자도 19%에 달했다.

◇차별화한 마케팅 전략 필요=한국코카콜라는 최근 '쿠우랑 놀자'란 이벤트를 실시하면서 2만1천여명에게 컴퓨터·게임CD 등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주스 '쿠우'의 주 소비층이 초등학생이며 이들이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활용한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패밀리 레스토랑 마르쉐는 최근 8종의 아동용 메뉴를 새로 내놓으면서 어린이들만 음식을 주문할 수 있는 별도의 카운터를 만들었다.

어린이 시장을 잡기 위한 업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비록 구매력은 크지 않지만 이들이 가정 내 구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제품 광고도 어린이 시장을 고려했을 때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이 가장 선호하는 광고는 하이마트·맥도널드·서울우유·BC카드·삼성 애니콜 순이었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어린이와 거의 무관한 전자제품·신용카드 광고에서 어린이 인지도가 높았다는 것은 미래고객을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며 "어린이를 겨냥한 광고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이 시장을 잡으려면 기업의 마케팅 전략도 제품의 특성에 따라 차별화해야 할 것으로 조사됐다. 또 어린이의 의사가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식음료·장난감·학용품·신발 등의 경우 광고에 한정하기보다는 거리 판촉 등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쳐야 한다.

과외·컴퓨터 구매·외식의 경우 부모가 구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구매결정 과정에서는 자녀의 선호·건강 등의 측면을 충분히 고려한다. 따라서 일단 부모를 대상으로 판촉 노력을 집중하되 그것이 다시 자녀들에게 직접 전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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