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부터 50대 사장님까지 라면으로 끼니 때우며 구슬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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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8일 오전 7시 자원봉사자들의 임시숙소인 강원도 강릉시청 지하 1층 공익요원 대기실. 마룻바닥에서 모포 한장을 덮고 잠을 자다 방금 깨어난 박수관(32·자영업·서울 강서구 등촌동)씨는 삽과 라면 등 보급품 등을 챙기느라 손길이 분주했다. 이날 현재까지 자원봉사의 손길이 닿지 않던 왕산면으로 떠날 시간이기 때문이다.

지난 3일 강릉에 도착한 朴씨는 흙더미에 묻힌 옷가지를 빨래하고 집안에 들이닥친 토사를 치우는 일을 주로 해왔다. 점심은 자신이 챙겨온 초코파이 2개로 때웠고 일손이 워낙 달려 쉴 틈없이 저녁까지 일했다.

수재민들과 함께 라면으로 저녁 끼니를 때우고 노인들 말벗을 해주다가 오후 10시쯤 강릉시청의 임시숙소로 돌아오는 생활을 계속했다. 朴씨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무작정 이곳을 찾았다"며 "수재민들의 고통을 생각하면 사소한 생활의 불편은 참을 수 있다"고 말했다.

7평 규모의 자원봉사자 임시숙소에는 전국에서 찾아온 자원봉사자 15명이 머물고 있다. 고등학생에서부터 50대 사장님까지 연령과 직업도 다양하다.

이들은 단체 봉사대원과 달리 면사무소 등을 통해 알아낸 외곽지역 피해지를 중심으로 개별적으로 봉사활동을 한다. 현장에 도착하기 위해 1~2시간 걷는 것은 기본이고, 주로 구호 손길이 미치지 않는 강릉시 구정면·주문진읍·양양·동해 등을 누볐다.

이들에게 공식적으로 지급되는 것은 '시민자원봉사대'라고 적힌 조끼 한벌 뿐이다. 숙소의 위생상태가 좋지 않아 피부병과 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지난 4일 휴가를 내고 이 곳을 찾았다는 金모(42·회사원·서울 강남구)씨는 "고립된 지역의 수재민에게는 단 한명의 자원봉사자도 큰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학교를 결석하면서 이 곳을 찾은 이교례(20.연세대1)씨는 "수재민의 실태는 신문을 통해 본 것보다 더욱 처참하다"며 "더 많은 봉사자들이 이곳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민 김동은(61·강릉시 주문진읍)씨는 "절망에 빠져 있었는데 외진 곳까지 찾아온 사람들 덕분에 희망을 갖게 됐다"며 고마워했다.

행정자치부에 따르면 8일 현재 수해지역 복구작업에 참여한 주민·회사원·학생 등 자원봉사자는 36만1천4백40명(연인원)으로 집계됐다. 또 공무원 2만3천7백20명,군인 37만6천81명,경찰 4만3천8백50명 등도 동참했다.

강릉=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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