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부활하는 '마약王國' 아프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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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AK47 소총에 수류탄과 대검으로 무장한 군인 다섯명이 미니밴 한대를 둘러싼다. 보닛부터 배기구까지 밴 내외부를 이잡듯 뒤지던 군인들은 급기야 대검으로 타이어를 찢고 손을 집어넣더니 뭔가를 꺼내든다. 비닐로 밀봉된 흰가루 덩어리다. 팬티만 걸친 채 몸수색을 당하던 탑승객 7명은 순식간에 포승줄에 묶여 어디론가 끌려간다.

지난달 27일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 접경지대인 모스코프스키 마을. 아프가니스탄인 7명을 태운 9인승 밴이 바지선에 실린 채 두 나라를 가르는 판지(다섯갈래라는 뜻)강을 건너 타지키스탄 땅에 들어서자 타지키스탄 국경수비대원들이 1시간여 동안 밴을 뒤진 끝에 또 한차례 '파키스탄 티(tea)'를 찾아냈다.

'파키스탄 티'는 동남아의 '골든 트라이앵글'과 더불어 세계 최대의 마약생산지로 소문난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된 아편과 헤로인을 일컫는 은어.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아편 생산량의 70%, 헤로인 생산량의 75%를 공급하는 세계 최대의 마약왕국이다. 1998년 탈레반 정권이 들어서면서 마약 재배자를 사살하는 등 강력한 제재를 가하면서 잠시 주춤했던 아프가니스탄의 마약 생산은 지난해 말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뒤 급속도로 부활했다. 올해 예상 생산량은 아편 4천5백t, 헤로인 1백50t으로 3년 만에 세계 1위를 탈환할 것으로 추정된다.

아프가니스탄 마약의 절반은 타지키스탄과 접한 북부 국경선 지대 1백60㎞ 구간에서 밀반출돼 유럽·러시아로 흘러든다. 이 때문에 주로 러시아인으로 구성된 타지키스탄 국경수비대는 마약을 숨겨 들여오는 아프가니스탄 중개상들과 '전쟁'상태에 있다.

아프가니스탄 마약의 최대 수요처는 유럽연합(EU)과 러시아. 이들 지역에서 소비되는 마약의 95%가 아프가니스탄산이다. 이 때문에 EU는 하미드 카르자이 국가수반에게 "마약 재배를 막지 못하면 우리가 직접 재배지역을 공격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카르자이 수반은 "양귀비 등 마약원료 재배를 엄금하겠다"고 공언하고 단속에 나섰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처럼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양귀비는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이 나라 국민의 배고픔을 면하게 해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상품이기 때문이다. 1㏊의 땅에 양귀비를 재배하면 1만3천달러를 벌 수 있지만 밀을 재배하면 4백달러만 손에 쥘 뿐이다.

아프가니스탄 최대의 아편 재배지인 헬만드주 출신의 한 농민은 "올 초 싹이 돋아난 밀을 갈아 엎고 양귀비를 심었다"며 "아편만큼 배고픔을 덜어주는 작물이 있다면 바로 바꾸겠다"고 기자에게 말했다. 유엔 소속의 한 마약통제관은 "국제사회가 아프가니스탄 농민들에게 아편 농사를 포기할 만큼 충분한 지원을 해주지 않는 한 유럽의 마약중독자들이 아프가니스탄을 먹여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샨베(타지키스탄)·쿤두즈(아프가니스탄)=강홍준 순회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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