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신탁은행 도입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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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경제 개혁을 위해서는 금융제도의 뒷받침이 매우 중요하다. 앞으로 신탁은행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용술(金勇術) 북한 무역성 부상 겸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장이 2일 오후 도쿄(東京)국제포럼 건물에서 북한과 경제교류를 하고 있는 조총련 및 일본 기업·경제단체·연구소 인사 40여명을 상대로 북한의 경제정책에 관한 비공개 설명회를 열었다.

金부상은 "기업 활동을 위해선 금융개혁도 매우 중요하다"는 한 참석자의 지적에 신탁은행 도입 구상을 밝혔다.

북한에는 '제일신탁은행'이 있지만 실제로는 자금을 유치해 투자에 사용하는 신탁업무는 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탁업무 도입은 북한이 자본주의적 금융기법을 도입, 금융 개혁을 시작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회의에 참석한 한 조총련계 인사는 설명했다.

金부상은 또 북한이 추진 중인 경제개혁의 핵심을 '실리주의'로 표현하면서 "물가체계에 시장원리를 일부 도입한 것은 국가가 어느 정도 물가를 통제하면서 수요·공급의 원리로 결정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제는 기준가격의 5~10% 범위 안에서 수급상황에 맞춰 가격이 결정된다"며 "과거에는 생산자가 물건을 만들어도 제값을 못받기 때문에 시장에 내놓지 않고 뒷거래를 했지만 가격이 현실화한 뒤부터는 상점에 물건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북한 사정을 전했다.

조총련계 인사는 "북한의 새 물가체계는 1956년에 제정한 쌀값 제도 등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있는 물가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金부상과 동행한 한 북한 관리는 "지난해 5월 예란 페르손 유럽연합(EU)의장이 평양에 왔을 때 김정일(金正日)위원장이 '변화하겠지만 소련식 개혁을 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는 얘기로 북한이 독자적 개혁을 모색해 왔음을 시사했다. 金부상은 "사회주의로부터 '새로운 길'을 가고 있으며 2년 전부터 준비해 왔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한에서는) '경제개혁'이 낯선 말이어서 쓰지 않는다"면서 "경제개혁을 담당하는 전문기구도 설치했다"고 말했다. 金부상은 지난달 24일 일본에 도착해 11일 동안 도쿄·오사카(大阪) 등에서 조총련과 일본 기업인들을 만나 북한의 경제정책 변화를 설명하고 대북 투자 유치활동을 벌인 뒤 3일 귀국했다.

일본을 처음 방문한 金부상은 도쿄에서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전자상가 등 구석구석을 돌아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경제 침체라고 들었는데 일본의 경제 인프라가 대단하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그는 기업 경영관리방식 개선 방안에 대해 "일본을 모델로 연구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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