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부시 취임과 의원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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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열릴 때마다 한국 정계도 들썩거렸다.

4년 전, 초선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식을 거행한 2001년 1월 20일 워싱턴에는 국회 정원의 15%에 이르는 40여명의 의원이 북적댔다. 이들은 하나같이 '의원 외교'명분을 내걸고 취임식에 얼굴을 내밀었지만 잡음이 컸다. 상당수 의원들이 취임위원회의 초청장 없이 무턱대고 도미해 대사관원이나 교포들에게 입장권을 '구걸'한 끝에 취임식에 참석했다고 전해진다. 의원들은 접근해 온 브로커에게 수만달러를 주고 입장권을 샀다는 소문이 공공연히 떠돌았다.

대사관 직원들은 입장권 알선 외에도 의원들에게 인력.차량을 지원하고 미국 의원.관리들과의 면담을 주선하느라 업무가 마비됐었다고 한다.

하지만 미 정계 최대행사인 취임식을 전후해 바쁘기 짝이 없는 미 의원.관리들과 만남이 성사된 의원은 극소수였다. 많은 의원이 호텔방에서 소일하다 귀국해야 했다. 이들에겐 '취임식을 배경으로 지역구 홍보용 사진이나 찍으려고 외유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한데 올해는 이런 추태가 다소 진정될 것 같다. 국회에서 한.미의원친선협회 대표를 맡아온 유재건 국방위원장(열린우리당)은 6일 "오는 20일 부시 대통령 재선 취임식에 국회 차원의 공식 대표단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원들이 무작정 몰려가 미국 대통령을 먼발치에서 보기만 하다 돌아오는 헛수고를 되풀이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우리 의원들이 혈맹국의 경사에 예를 표하고 외교의 장으로 활용하려는 의도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러나 미국은 대통령 취임식을 다른 행사들과 달리 순수한 '집안 잔치'로 치러왔다. 초청장을 보내는 외국 손님들을 오로지 주미대사단에 한정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미 한국에는 한승주 주미대사 내외에게 공식초청장이 전달됐다. 더 이상의 초청인사는 없다. 의원 외교의 기회는 취임식 말고도 많이 있다.

강찬호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