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무용의 자존심 만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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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힘을 바탕으로 유럽 현대발레의 정상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스라엘 바체바 무용단. 조각 같은 남성 무용수(右)의 몸매가 인상적이다.

신흥 무용 강국 이스라엘의 자랑거리 가운데 하나인 바체바 댄스 컴퍼니가 첫 내한 공연을 펼친다.

오는 27~29일 LG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데카 당스'다. 데카(deca)는 히브리어로 10을,당스(dance)는 말 그대로 춤을 의미한다.

1985년부터 99년까지 공연한 바체바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를 모아 만든 작품이다. '10'은 바체바의 지난 10년사를 회고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이스라엘 기브츠 댄스 컴퍼니 위촉 작품인 '블랙 밀크'를 비롯해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 위촉 작품인 '파소메조'와 '퀸스 오브 골룹', 바체바 창단 30주년 기념작인 '애너페이즈' 등이 '데카 당스'를 구성하는 작품들이다. 바체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예술감독 오하드 나하린(50)이다.

단체명과 안무자 이름이 동의어로 통할 정도로 그는 무명의 바체바를 세계 정상급 무용단으로 키운 인물이다.

NDT의 객원 안무가를 거쳐 90년부터 이 단체에 몸담았다.

바체바 무용,아니 나하린 무용은 '컨템포러리(현대) 발레'로 분류된다.

발레의 견고한 전통 위에 자신의 독특한 예술세계를 세웠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그는 NDT의 지리 킬리언, 스페인 국립무용단의 나초 두아토 등과 함께 스펙타클한 유럽 현대발레의 정상급 안무가로 꼽힌다.

두아토는 지난 6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첫 내한 공연을 펼쳐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도발적 현대발레 새 장르 개척

나하린의 무용은 '힘'이란 말로 요약된다. 무용을 전공한 공연기획가 가네사의 김성희 대표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물론 안무의 구조에서도 도발적인 에너지가 넘친다"고 말했다.

이런 격렬한 동작에다 클래식과 펑크·록을 아우르는 다채로운 음악을 가미해 젊은 관객층의 인기가 높다. 그러나 스페인의 전통을 강조하는 두아토가 그렇듯이 나하린 또한 지나치게 '이스라엘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지적인 유럽 무용의 흐름을 대표하는 지금과 달리 원래 바체바 무용단의 뿌리는 미국 무용이었다. 세계 현대무용계의 대모인 마사 그레이엄으로부터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것. 64년 유대인 거부 바로니스 바체바 드 로스차일드가 그레이엄을 찾아가 "이스라엘 최고의 현대무용단을 만들자"고 제안한 게 태동 배경이다. 바체바는 그 갑부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후 30여년 동안 테크닉과 기교를 중시하는 그레이엄 스타일을 좇는 미국 출신 무용가들이 바체바를 이끌어 왔으나 원래의 목표대로 '최고'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런 구태를 깨고 명실상부한 세계 정상으로 키운 게 나하린이다.

일종의 예비학교인 '바체바 앙상블 주니어 컴퍼니'를 통해 지속적으로 기량있는 '새 피'를 수혈받고 있다.

최근 이런 유럽무용이 활발히 소개되면서 국내 무용계도 활기를 띠고 있다.

그레이엄 식의 미국식 무용에 익숙했던 무용가들이 열린 자세로 유럽 무용을 수용한 덕이다.

두아토와 나하린에 이어 곧 킬리언의 무용(10월 16~1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까지 소개되면 우리도 유럽 무용 최강자들의 작품을 대부분 경험하는 셈이다.

27일 오후 8시, 토·일 오후 6시. 6만~2만원. 02-2005-0114.

정재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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