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좌담北,日정상회담의미와전망] "北,日 경제지원 받고 美 압박서 벗어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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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반도를 중심으로 동북아 정세에 일대 지각변동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고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오는 17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간 적대관계 청산을 모색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는 올해 안에 경의선 철도 연결 등 구체적인 합의를 이끌어내 남북관계 역시 급물살을 타고 있다. 김경원(金瓊元)사회과학원장·장달중(張達重)서울대 교수(정치학)·고유환(高有煥)동국대 교수(북한학)를 초청, 최근 정세가 앞으로 동북아의 냉전구조의 해체와 남북관계·북미관계 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점검했다.

장:북한이 일본과 정상회담에 응하는 등 과거와는 현격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북한의 내부 사정과 달라진 국제환경 때문이다. 최근 경제개혁을 단행했으나 공급 확대를 위해 외부의 경제지원이 불가피한 상태다. 대외적으로는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의 대북 강경책으로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북한은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일본으로부터 경제지원을 이끌어내고, 미국의 압박에 대한 탈출구를 모색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고:북한의 최근 변화는 새로운 발전 전략의 구체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2001년을 '새로운 세기 김정일 시대'의 시작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신사고·경제개건·기술혁신 등 새로운 용어들이 등장했다.이러한 북한의 전략은 부시 미 행정부 출범 이후 잠시 주춤했다가 지난 7월 초 다시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경제개혁, 남북관계 원상회복,대외관계 확장 등이 하나의 큰 틀에서 이뤄지고 있다.

김:최근 북한의 변화는 金위원장의 목표가 무엇이고, 그것이 달성 가능한가 하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여기서 목표란 경제위기 극복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경제운영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문제는 공급이다. 수요가 증가하면 공급이 받쳐줘야 하는데, 과연 공급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북한은 중국처럼 농지가 넓지 않아 식량을 수입해야 한다. 결국 이같은 불리한 여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산업화를 위한 자본투자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한국과 일본, 국제금융기구 등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북·일 정상회담은 이러한 배경에서 성사된 것이다.

고:북한은 서울→도쿄→워싱턴으로 가는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남한으로부터의 지원은 생존에 필요한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일본으로부터 긴급재원을 확보하려고 마음 먹은 것이다. 일본도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킬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고이즈미 내각은 초기에 부시 행정부보다 더 강경한 대북정책을 채택했지만 그로 인해 한반도에서 일본의 영향력은 축소된 데다 내각의 지지율마저 떨어진 상태다. 결국 이를 타개하기 위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나아가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기 위한 6자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중요한 것은 북한이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것이다. 일본 국민은 일본인 납치문제와 미사일문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북한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 의지가 없는 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 사실 북한이 중국보다 개혁을 추진하기 어려운 것은 세습체제이기 때문이다. 경제운영 방식, 핵·미사일문제 등은 모두 김일성 시대부터 내려온 것이다.

예컨대 일본인 납치문제를 인정해야 대일 협상이 풀리는데 그렇게 되면 과거를 부정하는 게 된다. 따라서 북·일 관계개선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장:고이즈미 총리는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이번에 북한에 가는 것이다. 만약 이번 정상회담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끌어내지 못한다면 야당이나 보수언론은 물론 자민당 내의 반발도 매우 거셀 것이다. 한가지 유의해야 하는 것은 일본이 대북 경제원조의 보따리를 쉽게 풀면 그동안 유지돼 온 한·미·일 대북 공조체제에 금이 갈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김:현재로선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다. 예상컨대 두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추상적인 선언을 할 가능성이 크다. 양국간의 쟁점은 실무선에서 다시 협의해야 할 것이다. 일본 외교는 우리처럼 분위기나 여론에 좌우되지 않는다. 특히 일본 관료들은 따질 것은 철저히 따지는 스타일이다.

장:북한이 관심을 갖는 식민통치에 대한 일본의 배상금 지급은 일본인 납치문제와 미사일문제 등이 해결돼야 한다는 난제가 있어 이번 정상회담에서 큰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고:견해를 달리 한다. 북한이 정상회담을 수용한 것은 일본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의사로 볼 수 있다.따라서 서로 원하는 요구조건을 놓고 북·일간에 빅딜을 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金위원장은 핵과 미사일문제도 기꺼이 양보할 자세가 돼 있다고 본다.

장:북·일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해서 북·미관계가 머지 않아 풀릴 것 같지는 않다. 북한은 아직까지 생존의 담보인 핵과 미사일을 양보하면서까지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고:미국이 북한체제를 보장하면,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것이 북한의 입장이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 문제를 체제수호를 위한 협상카드로 사용할 것이다. 94년 미국과의 제네바 핵합의와 99년 미사일 발사 유예 선언 등에서 북한의 그런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김:북한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입장이다.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면 대량 살상무기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야 하나 동시에 그 무기들은 북한의 생존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물론 미국이 북한체제를 보장해 준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미국이 그렇게 할 가능성은 작다. 결국 金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

고:북·일관계가 잘 되면 남북관계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만약 북한이 경제개혁에 실패한다면 북한은 치명타를 입을 것이다. 북한이 남한·일본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장:문제는 북·일관계가 원만히 풀려 북한이 일본으로부터 경제적 실리를 취할 때 남한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렛대가 약해진다는 점이다.

김:북·일관계가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부정적 요인이 공존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한반도 문제의 주역이라는 의식을 갖고 원칙을 세워나가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미·일 공조체제를 확고히 해나가는 게 매우 중요하다.

고:남북간에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이번 합의는 큰 변수가 없는 한 그대로 이행될 것이다. 남북 경추위에서 합의한 사항들이 제대로 지켜진다면 金위원장의 답방도 성사될 것으로 본다.

장:金위원장의 답방 가능성보다는 김영남(金永南)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남한에 올 가능성이 크다.

김:남북한이 실행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실천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 金위원장의 답방을 국내정치에 이용해서는 안되며, 남북관계는 언제나 초당적 차원에서 추진돼야 한다.

정리=이동현·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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