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애들 다니는 학원 안보내면 불안·초조…'엄마병'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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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5면

"집중력을 키우려면 바둑이 좋다던데.뇌호흡 프로그램도 좀 해봐야겠지.아예 영재학원을 다니는 게 나을까."

주부 김연희(30·서울 광장동 광진구)씨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정보수집이다. 아이의 유치원 학부모들과 어울리며 어느 학원에 보내는 게 좋을지 알아보는 것.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인 주부 이수진(33·서울 구로구 구로동)씨도 마찬가지다.

지금 3년째 배우고 있는 피아노를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바이올린이나 플루트를 시작해봐야 할지 고민이다. 학교 수행평가에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피아노로는 부족하다는 주위 학부모들의 말 때문에 갈등이 시작된 것이다. 둘다 시키고 싶지만 이미 아이의 시간표는 밤 10시까지 꽉 차있다.

최근 부모들의 가장 큰 고민은 자녀 교육이다.무언가 부족한 건 아닌지 다른 엄마들에 비해 정보가 늦는 건 아닌지 항상 안절부절하지 못한다.

주부 김영진(36·서울 강남구 개포동)씨는 "어디가 좋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학원을 옮기죠. 피아노를 배우다가 클라리넷이 좋다는 말을 들으면 그걸로 바꾸고, 수영을 시켰다가 스케이트를 시키는 식으로 갈팡질팡이에요. 그런 식이니 아이가 제대로 할 줄 아는 것도 없죠.그걸 알면서도 남들 하는 걸 안하면 초조해져요"라고 말한다.

아이가 집에 있으면 불안해지는 부모도 있다.

"다른 아이는 학원에서 뭔가 배우는데 우리 애만 놀고 있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진다"는 주부 박희진(37·서울 송파구 문정동)씨는 "적성을 고려해 좋아하는 걸 시켜야 한다는 건 알지만 그럴 수가 없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에게 과도한 학원교육이 도움이 될 리 없다.

지난해 아들을 대학에 보낸 주부 곽희수(45·강원도 원주시)씨의 경우를 보자. '남들 다하는 건 다해봐야 한다'는 생각에서 강남으로 이사를 하고 좋다는 학원은 다 보내봤지만 그리 좋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다.

곽씨는 "재수를 하고 있던 아들이 학원을 안가고 놀러다녔다는 고백을 어느날 하더군요"라며 "'학원에 보내놨으니 됐겠지'하고 믿고있던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전문가들은 "학원을 많이 보내는 건 결국 엄마가 안심하고 편하려는 것일 뿐 실제로 아이에게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분석한다.

김창기정신과 김창기 원장은 이런 현상에 대해 '엄마병'이라고 진단하며 "어렸을 때 과도한 학습을 시키면 자율성과 창의성을 해칠 뿐"이라고 지적한다.

김박사는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아이만 보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불안하다'는 증상을 하소연하고 있다"고 전하며 "부모의 조급증은 자녀의 성적을 올리지도 못하고 가족내 갈등만 깊게 만들어 결국 자신이 정신과 치료를 받게 만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은 "교육제도에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제도라기보다 엄마들의 신분상승 욕구"라며 "과연 아이에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지도 않고 무조건 공부를 강요하지는 말라"고 말한다.

이같은 부작용을 피하고 아이가 공부를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는 아이에게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고 이들은 조언한다.

서울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신의진 박사는 "어렸을 때는 학원교육으로 한동안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지만 그것이 중·고등학교까지 계속되는 경우는 없다"며 "아이들이 공부에 대해 거부감이나 저항감을 갖지 않도록 해야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부를 강요하기보다는 시간관리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도와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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