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 교육이 먼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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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빠, 한국 가족 초청하는 파티를 우리집에서 안 하면 좋겠어요." 여러 가족을 초대해 즐거운 저녁을 마치고 손님들이 대문을 나서자마자 울상을 지은 딸 아이의 얘기다.

궁금해서 이유를 물은즉, 딸 아이는 "왜 애들이 내 방에서 인형과 학용품을 나한테 묻지도 않고 꺼내서 만지고 놀아요 ? 그리고 놀고 나서 잘 놀았다고 인사는커녕 인형들을 제자리에 갖다 놓지도 않았어요. 자기네 집에도 소파가 있을 텐데 왜 소파 위에서 그렇게 뛰고 난리예요 ?" 등등 수도 없이 불만을 늘어 놓는 것이었다. 부모들이 아빠 친구니까 친해서 그렇고 한국인들은 친하면 가족같이 생활한다고 딸 아이에게 설명했더니, "아빠, 언니들도 내 물건 함부로 안 만지잖아요"라고 대꾸하는 것이었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부모들은 지나치게 아이들에게 관대하다. 한국의 대부분 가정에서 많아야 하나 혹은 둘의 자녀를 낳다 보니 아이는 부모에게 절대적인 존재이며 부모는 아이의 현대판 노예가 된 듯한 인상을 주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자식이라면 벌벌 떨어서 기본적 예의도 가르치지 않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서양인의 시각으로 보면 참으로 무책임한 부모라고 표현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아주 어린 대여섯살 아이들에게 돈을 주고 혼자 아이스크림을 사먹게 한다. 심지어 엄마가 아이에게 돈을 주면서 동네 수퍼마켓에서 물건을 사오는 심부름을 주저없이 시킨다. 그리고 아이들이 심부름을 하면 참 잘했다고 칭찬하고 대견해한다. 놀이터에서 어린아이들이 부모의 보호 없이 노는 경우도 허다하다. 많은 서구의 부모들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자녀 보호 및 교육에 관한 커다란 차이점이다.

회사의 거래처에서 상당히 높은 지위를 가진 커리어 우먼인 한 한국인 친구는 맞벌이를 하는데 아침 일찍 부부가 출근을 해야 하므로 초등학교 1학년인 딸 아이를 혼자 아파트에 남겨 두고 매일 출근을 한단다. 아이는 한 시간쯤 혼자 있다가 아파트 문을 잠그고 학교를 가고, 베이비 시터는 오후에 와서 딸 아이를 봐준다. 긍정적인 면에서 보면 딸 아이가 똑똑하고 또 장래에 독립심이 커지고 용감해지겠지만 서양의 많은 나라에서 이 경우는 불법일 뿐 아니라 부모가 경찰에 체포되기까지 한다.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지속적인 관찰과 교육이 필요하다. 대여섯살 먹은 아이를 혼자 놀이터에서 놀게 한 뒤 혼자 잘 놀았다고 칭찬을 해주면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 때의 예절을 배울 길이 없다. 부모가 감독하지 않는 상태에서 아이들끼리 놀게 하면 타인의 물건에 손을 댈 때는 상대방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든지 친구의 장난감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든지 혹은 즐겁게 가지고 논 후에 깨끗이 정리해서 제 자리에 놓아야 한다든지 등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인성 교육을 배울 방법이 없다. 힘있는 친구가 빼앗아 놀거나 적당히 서로 양보하는 정치적 기술은 습득할지 모르지만.

어렸을 때의 사회적인 기본 교육이 인생을 살면서 인품과 성격을 형성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부모는 없다.

한국의 부모는 자식 교육에 상상할 수 없는 투자와 희생을 한다. 얼마나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열정이 높으면 학원이 많다고 그 동네 아파트 값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겠는가 ?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한국의 부모는 자식 교육에 열성적이다. 교육이 자녀의 장래를 밝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교육 덕분에 오늘날 한국이 이렇게 잘 사는 나라로 성장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식에게 알파벳을 가르치기 훨씬 이전에 가장 기본적인 사회 교육부터 먼저 관심을 갖고 가르쳐야 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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