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시아 대재앙] 원시부족들 '육감'으로 대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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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생존자 지진해일이 발생한 지 9일째인 지난 3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아체주 해안으로부터 약 160㎞ 떨어진 해상에서 표류 중이던 한 인도네시아 청년이 극적으로 구조됐다. 리잘 샤 푸트라(23)는 그동안 나뭇가지로 만든 뗏목에 의지해 빗물로 연명해 왔다(사진(上)). 지나가던 화물선에 구조된 푸트라가 5일 말레이시아 노스포트에 도착해 앰뷸런스 안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사진(下)).[AFP.AP=연합]

인도 벵골만의 원시 부족민 가운데 상당수가 지진해일이 닥치기 직전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고 AP통신이 4일 보도했다. 인류학자들은 "원시 부족민들은 자연의 민감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육감과 지혜를 아직 갖고 있어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인도 본토의 동쪽에 있는 안다만.니코바르 제도에는 대(大)안다만족.옹게족.자라와족.센티넬족.숌펜족.콘둘족.니코바르족 등 7개 원시부족이 살고 있다. 숫자는 불확실해 400~1000명까지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가운데 대안다만족 41명과 옹게족 73명 모두 지진해일이 몰려오기 전에 고지대로 대피해 무사하다고 인도 정부 관계자가 밝혔다. 이 지역은 진앙인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인근 해역에서 불과 240㎞ 떨어져 피해가 극심했던 곳이다. 다른 5개 부족의 피해 현황은 인도 정부 인류학팀의 현지 실사가 완료돼야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생존자가 많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지진해일이 덮친 이틀 뒤인 지난해 12월 28일 인도 해양경비대의 헬리콥터는 이 지역을 순찰했다. 그때 벌거벗은 한 부족민이 헬리콥터를 향해 화살을 쐈다. 해양경비대 아닐 타플리얄은 "지진해일에서 살아남은 센티넬족 남성이었다"고 밝혔다. 안다만 경찰 책임자인 데올은 "지진해일이 닥쳤을 시점은 평소 이들이 물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와 있을 때인데 원시부족 피해자가 매우 적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인류학자들은 "원시부족들은 바람의 움직임과 새들의 날갯짓을 통해 자연현상을 파악하는 인류의 지혜를 아직 갖고 있어 목숨을 건졌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원시부족 보호운동을 펼치고 있는 아쉬스 로이 변호사는 "이들은 바람의 냄새를 맡고 노 젓는 소리로 바다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그들은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육감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시부족들은 옛모습 그대로 생활하고 있다. 돌을 부딪쳐 불을 피우고 나뭇잎.짚으로 엮은 오두막에서 산다. 활.화살로 사냥을 하고 원시적인 방법으로 물고기를 잡아 먹는다. 외부인들이 접근하면 화살을 쏘며 적개심을 나타낸다. DNA 연구 결과 이들에게는 7만년 전 인류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아프리카에서 인도네시아를 거쳐 이 지역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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