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그늘 벗었지만 끼는 어쩔 수 없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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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8면

늘 짐이 되어온

범상찮은 집안내력

의대에 진학한 것도

문학상을 탄 재능을

그냥 묵혀뒀던 것도

다 그 탓이다

하지만 고뇌를 잊고

다시 찾은 내 자리

그 곁엔 결국

영화와 아버지가 있었다

'잘 난 자식'을 둔 부모는 사회적으로 위신이 서고 가문의 영광이 되지만 '잘난 부모'를 둔 자식은 대개 그 위세에 눌려 마음 고생에 시달리거나 성장기에 빗나가기 쉬운 경향이 있다.

올해 월드컵에서 각광받았던 차두리 선수가 주위에서 '차범근의 아들'로만 바라보는 바람에 한 때 축구를 그만 둘 생각을 했었다고 토로한 것이나, 고 박정희 대통령의 외아들 박지만씨가 수차례에 걸친 마약 복용으로 최근 구속된 가슴 아픈 사건 등에서 이런 대물림의 단층(斷層)현상을 보게 된다.

1964년 봄 서울대 문리대 시절. 서울 중동고등학교 동창들의 야유회가 있던 날이었다. 야유회가 끝나고 다들 뿔뿔이 흩어진 뒤 길종이와 버스를 탔다. 술김에 둘이서 합의한 것이 술을 더 먹자는 거였다. 나는 땡전 한푼 없었다. 그러나 길종은 바지주머니에서 미군 군표(軍票·달러 대체표)를 살짝 보이며 자랑했다. 우리는 낙원동 바가지 유흥가를 함께 어깨동무하고 들이닥쳐 하꼬방 집의 2층으로 올라갔다.…12시가 넘었다. 통금이 있을 때다. 그런데 길종이 미군 군표를 꺼내 흔들며 술과 안주를 더 가져오라며 접대부 여자들을 1층으로 내려보냈다. 그러더니 갑자기 천장을 살피고는 밖으로 뚫린 조그만 출구를 하나 발견하더니 나더러 튀자고 했다.

시인 김지하씨가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www.pressian.co.kr)에 '나의 회상, 모로 누운 돌 부처'라는 제목으로 연재 중인 회고록의 한 대목이다. 여기서 김씨의 친구가 바로 고 하길종 감독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대학(UCLA)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하고 귀국해 '잠자던' 한국영화계에 모더니즘의 자명종을 울려 전설처럼 전해오는 이름.

하씨는 '화분''병태와 영자''바보들의 행진' 등 일곱편을 만든 감독으로, '시대적 영상과 반시대적 영상'이라는 평론집이 웅변하듯 거칠 것 없는 비평으로 적과 동지를 동시에 만들었던 비평가로, 서울예전(현 서울예대) 초대 영화학과 교수로 격정적인 삶을 살다 38세이던 1979년 요절했다.

앞의 회고록의 다음 부분은 하 감독은 무사히 탈출했으나 김씨는 지붕으로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작부들에게 잡혀 포주 등으로부터 피멍이 들도록 뭇매를 맞고 나중에 어떻게 어떻게 해서 동향의 한 작부와 '새벽의 풋사랑'에 빠지게 됐다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또 미군 군표는 유효기간이 지난 것이었고, 하 감독은 그것을 빤히 알면서도 짓궂게 '사기'를 쳤다는 것이다.

이처럼 객기와 호방함, 세상을 향해 무모할 정도로 돌진하는 비판정신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하 감독의 이미지를 그의 외아들 하지현(35)씨에게서는 거의 찾을 수가 없다. 얼굴 가득한 온순한 표정….

서울대를 졸업하고 용인정신병원에서 의사로 근무하고 있는 하씨는 "아마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대를 지망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정신분석학을 전공한 그는 이제 자기 치유가 된 상태라 과거를 넉넉하게 돌아볼 정도가 됐다. 더구나 두 아이의 아버지까지 돼 있으니.

"지나고 나니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왜 그렇게 알레르기적인 반응을 보였을까 싶어요. 아마 내 자신의 정체성이 내 아닌 다른 존재에 의해 규정된다는 게 싫어서였을 거예요. 지금은 주변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나'를 확실히 찾은 것 같아요."

먼 길을 돌아 '자기'를 찾은 하씨는 모르는 사이에 아버지의 업(業)근처로 돌아와 있었다.

배 우겸 감독인 삼촌 하명중(55)씨가 '명성황후'를 영화로 만들고 있는데 하씨는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다. '땡볕'이후 10년간 메가폰을 놓았던 하 감독은 이번 작품으로 화려하게 재기하려는 소망을 갖고 있다. 이미 랜드마크라는 할리우드의 영화사로부터 전액 투자 약속을 받아놓은 상태여서 이르면 내년 1월께 촬영에 들어간다.

하 감독은 출연배우와 감독을 모두 외국인으로 기용해 '마지막 황제'같은 대작을 만들겠다는 포부다.

하지현씨는 또 하명중 감독의 두 아들, 즉 사촌 동생들과도 어쩔 수 없이 영화로 얽히게 될 것 같다. 남가주 대학(USC)에서 연출을 공부한 하 감독의 장남 상원(30)씨가 감독 데뷔작을 준비하면서 하씨에게 도움을 구하고 있고, 영상원 4학년에 재학 중인 하 감독의 차남 중원씨도 감독을 꿈꾸고 있어 모른 척 할 수가 없는 입장이다.

사실 그는 일찍부터 예술적인 지향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대학교 때 연극반 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직접 쓴 희곡으로 학내에서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활동하던 동료 중 몇몇은 독일에서 연출을 공부하거나 문화마케팅 사업을 하고 있다. 이들이 "우리도 다시 한번 뭉쳐 일을 쳐보자"며 바람을 잡고 있어 하씨가 앞으로 어떤 변신을 하게 될지 예측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그는 "의사를 그만두고 영화일이나 다른 연극일에 전념할 것 같지는 않다"며 자신이 '현실적인 사람'임을 강조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아버지 얘기로 돌아왔다. 회고전을 기획한다거나 유고를 책으로 묶는 것 같은 사업을 할 의향이 없냐고 물었다.

"워 낙 이것저것 벌여놓은 일이 많아서요. 누가 나서서 한다면 도울 수는 있지만. 그런데 아버지 영화 회고전하면 오히며 마이너스 아닐까요. 냉정히 말해 아버지 영화는 허접하잖아요. 검열때문에 워낙 많이 잘려 연결이 안 되는 부분도 많고, 자의식 과잉으로 거슬리는 부분도 있구요. 사실 '바보들의 행진'이나 '수절''한네의 승천'같은 영화들은 참 좋지만 '여자를 찾습니다' 같은 것은 조금 실망스럽잖아요."

그는 "아버지는 영화보다는 평론이 더 좋고 평론보다는 교육자로서 더 위대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하씨 자신은 아버지의 두 재능, 즉 자유로운 예술가와 실천하고 조직하는 능력 중 후자를 물려받은 것 같다고 했다.

현재 메디게이트(www.medigate.net)라는 의사 중심의 커뮤니티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조직가로서의 뛰어난 재주를 발휘하고 있는 그가 문화예술 영역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지, 자못 기대가 크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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