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雜株는 거들떠 보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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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우량주를 잘 분석한 뒤 사들이되 잡주(부실 종목)는 거들떠보지 마라."

1980년대 후반 시황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던 엄도명(63·현 닥스넷 대표이사)씨와 그의 아들 준호(30·현대증권 투자분석팀)씨가 한결같이 강조하는 투자전략이다. 嚴사장은 서울 여의도 증권업계에서 유일하게 애널리스트를 대물림하고 있다.

애널리스트는 주가 향방을 점치는 직업으로 국내에선 1980년대 초반부터 등장했다. 연륜이 이처럼 비교적 짧은 애널리스트 업계에서 이들의 '동행(同行)'은 화제가 되고 있다.

이들은 매일 오전 6시에 서울 화곡동 집에서 여의도까지 같은 승용차로 출근하면서 증시상황과 향후 주가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아들 준호씨는 "장세를 판단하기 어려울 때 아버지가 들려주는 과거 경험들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올바른 투자방법은 결코 멀리 있는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특히 한꺼번에 일확천금을 노리고 주식투자에 나서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표 참조>

嚴사장은 특히 "주식은 귀신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이는 잘못된 것"이라며 "주식은 올바로 분석하는 투자자들에게 적정한 대가를 주는 재테크 수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90년대까지 주가예측이 비교적 쉬웠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미국 증시의 영향력이 워낙 커 국내 주가가 얼마까지 간다고 말하는 게 무책임한 일이 돼버렸다"며 주가분석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편 준호씨는 "회계부정으로 미 증시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깊은 상황이기 때문에 연말까지 국내 주가가 크게 오르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嚴씨 부자는=아버지 嚴씨는 국내 애널리스트 업계에서 창업세대에 속한다.

그는 85년 대유증권(현 브릿지증권)에서 현재 증권사들이 발행하고 있는 '데일리(일일시황지)'를 '일보(日報)'라는 제목으로 처음 발행했다.

당시 소형 증권사였던 대유증권이 일보를 내자 20여개의 다른 증권사들이 6개월도 안돼 일보 발행에 나섰을 만큼 그가 냈던 일보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嚴사장은 "일보를 처음 냈을 때 각 증권사의 여직원들이 일보를 얻어가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여의도 대유증권 영업부에서 진을 쳤다"고 회고했다.

그는 주식투자 이론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외국의 증권 관련 서적 5백여권을 국내 주식투자에 적용해 얻은 경험들을 84년 『실전주식투자』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그는 또 90년 '엄도명 투자연구소'라는 개인회사를 차려 3년간 일일 투자정보지를 유료로 판매했다.

반면 아들 준호씨는 애널리스트 경력 5년차의 신출내기다.

그는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하는 데 아버지의 영향력이 컸다고 털어놨다.

준호씨는 "대학에서 경제학과를 전공하면서부터 아버지의 뒤를 밟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증권사 신입직원 당시 물가에 내놓은 자식 대하듯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바라보시던 아버지가 지금은 해외증시 등에 대해 말하면 귀를 기울여 주신다"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 투자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애널리스트가 되겠다"고 말했다.

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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