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 섬나라 노퍽 "휴대전화 없이 조용히 살겠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남태평양 고도(孤島)의 주민들은 삶의 편리함보다 여유로움을 선택했다.

남태평양의 호주령 노퍽섬이 22일 '휴대전화 청정지역'으로 선포됐다. 호주 시드니에서 북동쪽으로 1천6백㎞ 떨어진 이 섬의 주민 2천명은 이날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안건은 호주 정부가 내놓은 수백만달러 규모의 이동통신망 설치 제의를 받아들이겠느냐는 것이었다. 투표 결과 주민들은 찬성 3백56표, 반대 6백7표로 휴대전화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 섬에 깔려 있는 2천4백여대의 유선전화와 바다밑으로 깔린 광케이블을 통해 연결된 인터넷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

이 섬의 행정수반인 제프 가드너는 "섬 주민들 다수가 휴대전화가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래 노퍽섬 주민들의 35% 가량은 1789년 영국 군함 바운티호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선원들의 후손이다. 나머지 주민들은 남태평양 고도의 목가적이고 전원적인 자연환경과 생활에 반해 섬으로 들어온 호주 본토인들과 뉴질랜드인 등이다. 시작부터 외부에 알려지기를 꺼리는 이들이 모여 작은 공동체를 구성해 살아온 것.

그래서 노퍽섬의 주민들은 그 성향상 첨단 테크놀로지에 의지해 시간을 쪼개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들의 일상 생활보다 구애받지 않는 여유로운 삶을 선호한다.

이 섬에는 텔레비전이 1980년대에야 들어왔을 정도로 주민들은 현대문명에 대해 거리를 둬 왔다. 섬에는 굴뚝이 달린 공장 하나 없다.'자연친화적인 휴양지'라는 소문을 듣고 매년 찾아오는 4만명의 관광객이 섬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이다. 섬에 깔린 도로도 80㎞밖에 안되고 자전거 한 대면 섬 곳곳을 다닐 수 있다. 물론 교통체증이 있을 턱도 없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휴대전화가 없는 여유로운 생활을 즐겨서인지 노퍽섬 주민들의 평균수명은 78세나 된다.

채병건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