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이승우'책과 함께 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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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화려한 비평적 조명이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은 없지만, 꾸준하게 그리고 묵묵히 수작을 발표하는 대표적인 소설가로 이승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승우라는 이름에서 나는 어떤 문학적 위의(威儀)와 신뢰를 연상하게 된다.

'책과 함께 자다'(『문예중앙』2001년 가을호) 역시 이승우 특유의 진지한 지성의 향취와 신선한 문제의식을 엿볼 수 있는 문제작이다.

이 작품은 이른바 '책의 죽음', '책의 위기'를 절묘한 이야기 설정을 통해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소설이다. 작품은 주인공이 "천장까지 온통 책으로 뒤덮여 발을 들여놓을 틈도 없는 방 안에 잠든 듯 죽어 있는 한 남자에 대한 기사"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책과 함께 한 인생의 서글픈 최후를 비유하는 이 대목은 곧바로 이 소설의 주제와 연결된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책 때문에, 책과 더불어 죽은 그 남자는 누구인가? 그를 둘러싼 기이한 사건에 대한 주인공의 회상이 소설의 뼈대를 구성한다. 그 남자와 주인공은 '책'이라는 코드로 맺어진 특수한 관계다.

그의 인생은 한마디로 책과 모든 것을 함께 한 여정이었다. 3대째 책을 보급하고 전달하는 일을 수행해왔으며, '책배달조합'이라는 이색적인 기구를 만들어 다양한 조합원들에게 일주일에 세 권씩 양서를 보내던 사내는 점차 책을 멀리하는 세태에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점차 진지한 책에서 멀어져 포르노와 CD·무협지 등을 주문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급기야 책배달조합의 조합원은 단 한 사람만 남게 된다. 그는 주인공이 입주한 아파트의 전 거주자인 성목경이라는 인물이었다.

성목경은 이미 고인이 된 처지였지만, 어김없이 일주일에 세 권씩 배달되는 책으로 인해 성목경과 책배달조합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 주인공 한정태는 자신이 성목경의 입장이 돼 마지막 조합원을 찾아온 사내, 즉 '책배달꾼'을 조우하게 된다.

그 만남은 책배달꾼 사내로서는 평생 책과 함께 살아온 자신의 인생에 대한 자부심을 확인하고자 하는 마지막 노력이었으며, 동시에 이미 책에게서 멀어진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처절한 시도였다. 한정태와의 만남 이후 그 사내는 이십여 일을 굶은 끝에 "마치 탑을 쌓아올린 것처럼 바닥에서 천장까지 책들이 포개져 있는" 방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던 것이다.

'책과 함께 자다'는 책으로 대변되는 인문적 사유의 장이 축소되면서, 우리네 일상이 급격하게 찰나적인 오락으로 채워지고 있음을 작가 특유의 비상한 상상력에 의해 보여주고 있다.

그 과정에서 소설은 시종 타산적인 아내/인문적인 주인공, 천박한 오락문화/진지한 책문화, 지식인의 고독/대중의 처세술 등의 선명한 이분법적 인식을 드러낸다. 주인공과 아내의 이혼은 이제 이러한 대립적인 항목들이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우리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엇보다도 책배달조합의 사내라는 특이한 존재로 인해서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와는 아랑곳없이 오로지 '책'의 전통적이며 지성적인 가치를 수호하는 인물로 묘사되는 그는, 그 비현실적인 풍모와 올곧은 자존심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

과연 이 시대는 그 책배달꾼 사내의 절망을 포용할 수 없는 그런 문화적인 야만의 시대인가? 이제 다시 책을 얘기하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그의 절망적인 내면에 대한 따뜻한 공감일 것이다.

권성우<문학평론가>

<약력>

▶1960년 생

▶81년 한국문학 신인상 수상작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등단

▶소설 『생의 이면』『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등

▶대산문학상·동서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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