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에게 무슨 일 생기면 꼭 나타나는 ‘강 반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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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전국자원봉사대축제에서 대상을 받은 강석문씨(오른쪽)가 18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임당동 김옥자씨(가운데) 집의 연탄보일러 바꾸는 작업을 하던 중 활짝 웃고 있다. [강릉=이찬호 기자]

18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임당동 김옥자(59)씨의 구멍가게.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불볕더위에도 아랑곳없이 강석문(60)씨는 김씨 가게의 연탄보일러를 교체하는 작업을 했다. 동료가 낡은 보일러를 떼어내자 강씨는 2시간 동안 자신이 가져 온 새 보일러를 설치했다.

김씨는 16.5㎡(약 5평) 정도의 가게를 합판으로 막아 반은 가게로, 나머지는 방으로 꾸며 살고 있는 지체장애인. 가게 수입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지체장애인 남편(60)과 고철 등을 모아 팔고 있다. 7년 된 연탄보일러가 겨울마다 터지는 등 말썽이었지만 김씨는 보일러 교체는 엄두도 못 냈다. 이런 소식을 들은 강씨가 동료들과 함께 이날 보일러를 바꿔 준 것이다.

김씨는 “이곳에 이사한 1983년 수도가 얼어 터졌는데 누구인지도 모르던 강씨가 길을 가다 보고 고쳐 준 일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며 “보일러를 바꿔 이번 겨울에는 아무 걱정이 없게 됐다”고 기뻐했다.

강씨는 강릉시에서 알 만한 시민은 아는 자원봉사자다. 그는 84년 2급 열관리기능사 자격을 획득하고, 85년 대림설비를 개업하면서 자신의 기술을 어려운 이웃과 나누겠다며 보일러 수리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김씨 가게의 수도를 고쳐 준 것처럼 강씨는 그 이전부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섰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강릉농공고 1학년 1학기만 마치고 막노동에 뛰어들었다는 강씨는 건설 현장에서 집수리와 보일러를 배우고, 31세 때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지을 정도로 자수성가했다. 어렵게 성장했기에 그는 자연스럽게 어려운 이웃을 생각했고, 이들을 위해 봉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88년 보일러 자격증을 갖고 있는 동료와 금요회를 조직, 해마다 3가구 정도씩 어려운 형편에 있는 이웃의 집수리를 해 줬다. 2002년 태풍 루사, 2003년 태풍 매미, 2006년 평창의 집중호우 때도 어김없이 피해 복구 현장에 나타났다.

강씨는 5년째 새마을지도자 중앙동협의회장을 맡아 1년에 두 번 쌀 나누기, 재활용품을 수집해 환경 정화도 하고 판매 수익금으로는 연탄 나누기를 하고 있다. 또 여름마다 매주 1~2회 자신의 트럭에 방역기를 설치해 중앙동 일대 7개 마을을 돌며 방역활동을 하고 있다.

강씨의 별명은 ‘태극기 아저씨’. 94년부터 자신이 반장을 맡고 있던 가정에 스테인리스 게양대를 만들고 태극기를 나눠 줬다. 현재도 삼일절과 광복절 등에 200개 정도의 태극기를 자비로 마련해 나눠 주고 있다. 이런 공을 인정받아 강씨는 2008년 강릉시민상(지역개발 봉사 부문)을 받았다.

강씨는 “이제는 생업에서 은퇴할 나이”라며 “지금부터는 수입의 대부분을 봉사를 위해 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문적이고 다양한 기술을 가진 주민과 함께 ‘작은 봉사회’를 구성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종합적으로 봉사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강릉=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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