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0억원에 담긴 나눔의 미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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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팔순의 실향민 강태원(康泰元)옹이 평생 모은 2백70억원어치의 재산을 불우 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내놓았다는 소식은 각박한 세상에 한 줄기 단비 같은 미담이다. 지난해에도 1백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버림받은 사람들을 수용하는 충북 음성군 꽃동네에 아무도 모르게 기부했다고 하니, 숨어서 실천하는 그의 선행에 머리가 숙여지지 않을 수 없다.

康옹은 부(富)에 대한 바람직스러운 인식과 아름다운 나눔의 정신도 함께 내놓았다. 해방 직후 혈혈단신 월남한 그는 막노동판에서 쉰 떡을 사먹어가며 돈을 모았다. 어렵게 모은 재산일수록 집착이 강한 것이 인지상정이다. 살아 생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자식들을 통해 어떻게든 재산을 지키려는 세상이다. 그러나 康옹은 그토록 어렵게 모은 재산을 자식들 대신 불우 이웃들에게 내놓았다."자식을 제대로 키우려면 재산을 한푼도 물려주면 안된다"는 그의 설명은 담담하지만 참으로 감동적이다.

"돈 있는 사람들이 앞장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야 하며, 그래야 우리 사회가 산다"는 康옹의 지적은 빈부격차가 사회 통합의 최대 장애물로 대두된 세상에 던지는 비수 같은 메시지다.

다행히 최근 들어 기부문화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수천억원대의 개인 재산을 내 장학재단을 만드는 기업인들이 속출하고, 작지만 봉급의 일부를 꼬박꼬박 떼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샐러리맨들도 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기업들이 마지못해 내는 준조세성 성금이 기부금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 개인의 기부행위에 대한 세제혜택을 과감히 확대하고, 학교 교육을 통해 나눔의 문화를 확산시키는 등의 장단기 대책이 강화돼야 한다. 그것이 康옹 같은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가 해줄 수 있는 작은 보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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