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J 정말 나오나" 현대家 조마조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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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지난 17일 서울 계동 현대사옥 14층.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국회의원)의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이 건물에는 중공업 외에도 현대차그룹(몽구)·현대그룹(몽헌)·현대화재해상(몽윤) 등 현대가(現代家) 계열사들이 집결해 있다.

한 관계자는 "鄭고문과 관련해 입조심을 하라는 특별지시가 있었다"며 말을 아꼈다. 한달에 서너번씩 이곳에 들르던 鄭고문도 대선 출마가 본격 거론된 지난달 이후에는 주변을 의식해서인지 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관계기사 e3면>

재계의 거함 현대호가 대통령 선거 태풍권에 서서히 빨려들어가며 안팎으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두번째 대권 도전하는 현대가=1992년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썩은 정치를 바로잡겠다"며 대권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지 10년 만에 6남인 鄭고문이 다시 출사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이에 따라 현대가의 속앓이도 커지고 있다. 승패에 관계없이 기업에는 득이 될 게 없다는 분석이다.

현대는 10년 전 악몽이 되살아나는 게 아닌가 우려한다. 鄭명예회장의 경우 대선에서 진 뒤 세무조사·금융권 자금동결 등으로 홍역을 치렀다. 시대가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후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鄭고문이 대주주로 있는 중공업은 물론 현대차·현대상선 등 형제 그룹에까지 불똥이 튈 게 뻔하다고 걱정한다.

◇현대중공업은 진퇴양난=鄭고문은 중공업의 최대 주주로 11%의 지분(8백36만주·약 1천8백억원)을 가지고 있다. 또 중공업은 현대미포조선(27.68%)·현대기업금융(67.49%)·삼호중공업(1백%)의 지배주주며, 현대기업금융은 현대기술투자·현대선물의 대주주여서 지분이 얽히고 설켜 있다.

이들 중공업 계열사들은 한결같이 정치적 타격을 우려한다. 노조도 대주주인 鄭고문의 출마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이나 임직원에게 도움될 게 없다는 논리다.

현대중공업의 권오갑 상무는 "鄭고문이 표를 못 얻더라도 중공업의 돈과 직원은 절대로 동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출마를 선언하면 중공업에 피해가 없도록 지분을 정리하고 고문직을 사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형제 그룹들 방화벽 쌓기=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도 정치바람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대책을 마련 중이다.

현대그룹 측은 "형제 기업들이 주가하락·금융기관 압력 등의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선긋기를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정몽구 회장도 당분간 세계박람회 유치활동 외에는 대외활동을 하지 않고 경영에 전념키로 했다. 정치적 구설에 휘말릴 언론 접촉이나 공식행사 참석을 자제하기로 했다.

◇재계는 우려 반 기대 반=재계의 반응은 엇갈린다.

A기업 관계자는 "재벌이라고 공격을 받을 기업인이 정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현대뿐 아니라 재계 전체가 정치권과 대립할 우려마저 있다"고 말했다.

우리증권의 이종승 기업분석팀장은 "단기적으로 현대에 불리하겠지만 92년 상황과 다른 만큼 장기적으로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김석중 상무는 "부정적 시각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정치권도 경제를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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