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독일 유학 중 귀국한 김금화씨 신딸 유명옥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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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유학 초기 독일에서 접한 서구 학문은 제게는 시퍼렇게 날이 선 칼과도 같았어요. 현지 교수들과 한국 유학생들 사이에 '샤먼(무당)이 웬 예술공부?' 하는 시선도 없지 않았고요. 일종의 문화충격이었겠죠. 지금은 대학과 연구소에서 하는 예술.분석심리학 공부가 저의 무당 능력에 날개를 다는 준비라고 생각해요."

독일 유학 5년차로 최근 일시 귀국한 무당 유명옥(40.무당명 타지마할)씨. e-메일 ID로 히브리어(aleph.으뜸신)와 영어(pearl.진주)를 섞어쓰는 이 시야넓은 무당은 "샤머니즘과 서구 학문이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아니냐" 는 질문에 이렇게 답을 했다.

'큰무당' 김금화씨의 신딸인 그는 예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자기가 디자인한 한복 차림에 넉넉한 몸집까지도…. 독일 함부르크 예술대학(영화 전공)과 스위스 취리히의 칼 융 연구소(분석심리학 전공)를 오가며 공부하는 이 늦깎이 유학 무당의 자신감은 외려 강해진 듯했다.

그는 유학 전 문명비판서 성격의 단행본 '집없는 무당'을 통해 네오 샤머니즘론의 한자락을 펼쳐보였던 지식인 무당이다. 1997년 무당이 된 그를 포함한 '먹물 무당'에는 미국 유학 도중 신내림을 경험한 채희아씨와 서울대 출신의 김경란씨가 꼽힌다. 어쨌거나 국내 무업 활동 중 유학을 결행한 이는 유씨가 처음이다.

"무꾸리(길흉 점치기).굿.치병(治病)의례 등 무당의 3대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저의 관심은 따로 있었죠. 어떻게 하면 이를 사회차원으로 확대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어요. 그게 네오 샤머니즘 혹은 샤머니즘 르네상스랍니다. 요즘 유럽 사회 영성(靈性)의 흐름도 서구 합리주의와 동양의 세계관이 무리없이 융화돼가는 과정이에요."

유씨는 '불교.기독교=고등 종교' '샤머니즘=기층 종교'란 구분은 말도 안 된다고 했다. 시베리아에서 출발한 샤머니즘은 인류의 문화 유전자이자 영성의 밑바탕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서양 공부에 치여 '영빨'(영적 능력)이 줄지는 않았느냐고 물어봤다.

"지금도 매일 새벽 찬 물에 목욕재계한 뒤 향을 사르며 기도와 치성을 드립니다. 제가 모시는 신할아버지와의 영적 대화죠. 요즘에는 신령과의 사이가 더 돈독해져 영적 균형 회복이 더 쉬워요. 가끔은 칼 융 연구소 동료들에게 항아리에 물 떠놓고 신점(神占)을 쳐주는데, 신기하죠? 그들이 제 신령에 대해 그토록 깍듯합니다. 동양문화에도 밝았던 칼 융을 공부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럴까요?"

유씨의 계획은 3년 내 디플롬(자격증)을 따내고 박사과정까지 밟는 것이다. 한국 샤머니즘에 관한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것이 신할아버지가 자기에게 준 과제라고도 밝혔다. 디플롬 뒤에는 서울에서 심리치료센터와 영화제작 작업을 병행해볼 생각이다. 유씨가 이번에 서울에 온 것도 단편 영화 '아네모네의 합창'의 후반 작업(편집과 녹음)을 위한 것이다.

유씨는 2년 전 독일 국적 기자 출신의 60대 한국남자와 결혼했다. 자식은 없다. "세상의 모든 아픈 이를 위한 '샤먼 어머니'가 되는 게 꿈이기 때문"이다. 유씨는 7일 독일로 돌아간다.

조우석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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