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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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올해 92세의 원로수필가 피천득(皮千得)은 '지금 생각해보면 인생은 40부터도 아니요 40까지도 아니다. 어느 나이고 다 살만하다'고 썼지만 범인(凡人)들이야 어디 그런가. 자기 나이뿐 아니라 남의 나이를 갖고도 왈가왈부하게 마련이다. 권력이 따르는 자리라면 더욱 그렇다.

지긋한 나이를 중시하는 편에서는 노마식도(馬識途)의 고사를 들먹인다. '나이가 약(藥)'인 경우로, 영어 속담으로는 '연륜이 책보다 낫다(Years know more than books)'와 통할 것이다.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환공이 지금의 허베이(河北)성에 있던 고죽국(孤竹國)에 쳐들어갔다가 귀로에 길을 잃어 곤경에 빠졌다. 출전할 당시는 봄이었으나 돌아올 때는 계절이 겨울로 바뀌어서 더욱 힘들었다.이 때 명재상 관중이 '늙은 말의 지혜(馬之智)'에 착안해 나이든 말을 골라 길잡이로 풀어놓았다. 덕분에 환공 일행은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반면 젊은 나이를 앞세우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서양에 비해 '나이가 곧 권력'인 측면이 많은 우리 사회지만 각종 대회나 입학시험 같은 데서는 유독 '최연소'를 따지기 좋아한다. 조선조의 기록으로는 최연소 영의정은 만27세에 임명된 구성군 이준(浚)이었다. 그러나 그는 세종의 손자 인데다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로가 겹쳐 요즘 말로 특별임용된 경우니까 사정이 다소 다르다. 과거시험 문과 최연소 합격자로는 조선말의 거유(巨儒) 이건창(建昌·1852~1898)이 꼽힌다. 14세에 별시에 합격한 그는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4년 뒤에야 벼슬을 받았다. 남이(南怡)장군은 16세에 최연소로 무과에 급제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오는 26일부터 이틀간 인사청문회를 치르게 된 장대환(張大煥)국무총리 서리는 50세. 장관 평균연령보다 아홉살이나 젊대서 화제다. 본인도 그걸 의식했는지 장관들을 "잘 모시겠다"고 했다. 그러나 업무능력이나 신념·재산·병역문제가 아닌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를 갖고 시비하긴 어렵다고 본다.

50세가 적다지만 옛날엔 머리가 쑥처럼 희어진다 해서 애년(艾年)이라고 불렸던 만만치 않은 나이다. 나이 말고도 매섭게 따져볼 분야는 얼마든지 많다.

노재현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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