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식 대학 과학교육 기술발전 걸림돌 될수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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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오늘날 과학기술은 그 자체로서나 사회·문화 속에서 지니는 위치에 있어서나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내적으로는 새로운 전문분야의 출현과 함께 여러 전문분야의 복합·융합이 일어나고 있고, 외적으로는 사회·문화의 제반 영역에 과학기술이 깊숙이 개입하고 밀접한 연결을 맺어 나가고 있다.

그러나 대학의 과학기술은 과거의 모습을 답습하고 있다. 19세기의 과학기술 분야들의 구분을 그대로 따른 학과 구조가 버티고 있고, 과학기술 분야를 이과라고 하여 사회·문화의 다른 모든 영역을 다루는 문과와 철저히 분리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외부의 과학기술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의 모습을 고수하는 현재 대학의 상황은 17세기 과학혁명기의 유럽 대학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과 그 후의 전개과정은 다가올 미래를 두고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

17세기의 새로운 과학활동은 거의 전적으로 대학 외부에서 이뤄졌다. 오히려 대학은 새로운 과학에 대한 저항의 중심역할을 하기도 했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통해 새로운 우주구조를 내세웠을 때 대학의 학자들이 망원경 관측 데이터의 신뢰성 문제나 철학에 대한 천문학의 개입 부당성을 들어 격렬히 반대했던 것은 유명한 예다.

대학의 바깥에서 새로운 과학 이론이나 방법, 그리고 자연에 대한 태도나 기술과 관련, 혁명적 변화가 일어나 이른바 근대 과학이 형성되는 동안 대학은 13세기에 출현한 이래 한결같은 모습으로 일관했다.

이에 따라 근대 과학은 대학의 바깥에서 발전을 지속했고, 18~19세기에 와서야 대학이 받아들이고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앞서고 성공적이었던 대학과 국가는 발전했던 반면 그렇지 못한 곳은 낙오했다.

흥미있는 것은 19세기 대학에서 자리잡은 과학기술의 모습이 오늘날에 와서는 다시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19세기에 독자적 전문분야로 정립된 과학분야에 바탕한 학과 구조, 그리고 과학기술을 사회·문화의 다른 영역들에서 분리해 보는 문과-이과의 구분이 아직도 대학의 교육과 구조의 근간이 되고 있다.

19세기 과학의 상황과는 부합했지만 오늘날 과학기술의 상황과는 동떨어진 이같은 모습을 미래의 대학이 고수하게 되면, 17세기와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져 과학기술의 중요한 진전은 대학 외부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물론 17, 18세기에도 그랬듯이 오늘날 대학이 외부의 상황을 외면한 채 과거의 모습을 지속하는 것은 한참 동안은 가능할 것이지만, 그러는 동안 대학은 과학기술이 엄청난 중요성을 지니는 사회와 문화의 흐름에서 유리될 것이고 이같은 상태는 대학 자체는 물론 사회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오늘날 모든 나라에서 나타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심하다. 우리 대학이 이런 상황을 지속하다가는 대학과 함께 사회 전체가 낙오하게 될 것이다. 반면 대학이 변화된 과학기술에 더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한다면 과학기술이 주도하는 세계에서 앞서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대학이 하루 빨리 19세기 이래의 경직된 학과 구조를 깨고 새로운 분야, 복합 분야들의 출현에 대응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 문과-이과의 장벽을 허물고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과학기술에 대한 충분한 소양도 갖게 해야 할 것이다.

김영식(서울대 교수·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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