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피임약 일상적 복용땐 출혈 등 부작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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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9면

20대 여성이 2주간이나 질(膣)출혈이 지속된다며 병원을 찾아왔다. 평소 생리가 불규칙해 배란일을 잘 알 수 없던 탓에 성관계를 가질 때마다 응급피임약을 세차례나 복용했다고 한다. 출혈은 마지막으로 약을 복용한 후 3~4일 지나서부터 시작됐는데 생리 양은 평소보다 약간 적었다고 했다. 진찰을 해보니 피임약의 과다 복용으로 인한 기능성 자궁 출혈이었다.

응급피임약의 원래 보급 취지는 성폭행을 당한 후 임신 우려가 있거나 근친상간·미성년·유전질환 보유자 등 임신을 원치 않는 경우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사용목적을 생각하지 않고 응급피임약을 남용하는 경우가 크게 늘고 있다. 계획하지 않은 성관계, 콘돔이 사용 중 찢어졌다든지 사전에 먹는 피임약을 2일 이상 잊었을 때 등 피임이 불확실할 경우에 복용하는 사례가 더 흔한 실정이다.

응급피임약의 원리는 배란을 지연 혹은 억제시키거나 자궁내막을 교란시켜 수정란의 착상을 방해하는 것이다. 따라서 성관계 후 72시간 이내에 한 알을 복용하고 12시간째에 두 번째 약을 복용해야 피임 효과를 볼 수 있다.

이 약을 먹는다는 것은 호르몬을 과다 복용하는 셈이므로 생리가 평소보다 며칠 빠르거나 늦어지는 등 생리주기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므로 만일 생리 예정일에서 1~2주 경과해도 생리가 없거나 출혈이 지속되면 반드시 진찰을 받고 임신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응급피임약은 1회에 한해 효과가 있으므로 그 다음엔 즉시 다른 일반 피임약이나 콘돔 등으로 피임을 계속해야만 한다. 또한 이 약은 에이즈나 성병을 예방하지는 못한다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임시방편으로 응급피임약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계획적인 피임법을 생각해야 한다. 생리 시작부터 일반 피임약을 복용하거나 약을 일정하게 먹지 못할 상황이라면 자궁내 장치를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광례<강남미즈메디병원 산부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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