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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광받는 캐나다의 ‘유리알 판공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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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캐넌 장관의 다른 항목을 보면, 3월 미국 뉴욕으로 당일치기 출장을 갔을 때 식사비로 68.29달러를 쓴 것으로 기록돼 있다. 출장 목적에는 유엔 장애인 협약 비준을 위한 것이라고 적혀 있다. 캐넌 장관만 ‘짠돌이’ 출장을 다닌 게 아니다. 개리 런 체육부 장관의 공개 사항에는 최근 밴쿠버 육상 행사에 참석하기 위한 이틀의 국내 출장에서 숙박료 162캐나다달러, 식사비 104캐나다달러를 쓴 것으로 돼 있다.

캐나다는 2003년 12월 고위 공무원의 출장비와 접대비를 인터넷에 공개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었다. 긴축재정 정책을 추진하던 당시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데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었다. 지출 내역은 3개월 단위로 새로 정리된다. 허위나 누락을 감시하는 기구도 있다. 이렇다 보니 공무원과 관료로 활동하는 정치인들의 비용 줄이기 경쟁이 벌어진다. 2007년에는 스티븐 하퍼 총리가 국내 출장에서 110캐나다달러짜리 허름한 호텔에 투숙하자 야당이 “인기를 의식한 정치 쇼”라고 비난한 일도 있었다.

6년 이상 시행돼온 캐나다의 ‘유리알 판공비(辦公費)’ 정책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는 곳은 유럽이다. 정부가 각 부처 예산을 최대 40% 삭감하겠다고 선언한 영국에서는 정치인들에게 이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한 발 더 나아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고위직 관료와 유럽의회 의원들의 판공비도 낱낱이 공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별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는 EU의 고위 인사들이 회원국 국민의 혈세(血稅)로 충당되는 예산을 흥청망청 쓰고 있다는 지적을 동반한 것이었다. 프랑스 일간지 르피가로도 최근 캐나다의 제도를 상세히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프랑스에서는 이달 초 장관 두 명이 부적절한 공금 지출 때문에 경질됐다. 한 장관은 접대용이라며 1만2000유로(1860만원)어치의 쿠바산 시가를 산 것이, 다른 장관은 국제회의에 전용 항공기를 빌려 타고 간 게 문제가 됐다.

유럽에서 캐나다의 알뜰함이 조명 받고 있는 것은 복지 예산을 줄이고 세금을 늘려야 하는 경제 현실과 맞물려 있다. 지도층이 국민의 고통을 외면한 채 폼 나는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정은 좀 다르지만 한국에서도 지방정부의 예산 낭비가 문제가 되고 있다. 공무원의 외유(外遊)성 출장에 대한 논란도 간간이 불거진다. 어느 나라든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가 자신의 목에 방울을 달 의지만 있다면 캐나다를 못 따라 할 이유가 없을 듯하다.

이상언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