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노인,유도 3단 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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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 3일 오후 1시 대전시 유도회 주관으로 승단 심사가 열린 대전 대성중학교 유도장. 도복을 입고 나온 한 노인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주인공은 대전 대덕구 비래동에 있는 유도장인 양우관 총본부 소속의 이진동(鎭東·80)씨.

유도장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가 손자의 승단 심사를 지켜보러 온 것으로 짐작했다. 하지만 씨는 심사를 위한 경기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가 울리자마자 우렁찬 목소리로 장내 분위기를 제압했다. 그는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며 상대방을 압도한 끝에 유도3단을 땄다. 1997년 5월 2단이 된 뒤 5년 만이다.

충남 홍성 출신인 씨는 16세(38년)때 외삼촌이 살던 일본으로 건너가 고교를 다니면서 유도를 시작했다. 그러나 45년 해방과 함께 귀국한 그는 호텔 등에서 조리사로 일하면서 한동안 유도와 인연을 끊었다. 고교 시절 아르바이트를 하며 익힌 요리솜씨를 살려 생계를 유지하느라 운동할 여유가 없었다.

씨는 각종 국제경기대회에서 통역요원으로 활약하면서 유도복을 다시 입었다. 체력이 좋아야 봉사활동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86년 아시안게임, 88년 서울올림픽에 이어 한·일 월드컵 때 일본어 통역요원으로 활약했다. 씨는 92년 고희(古稀)의 나이에 유도 1단을 땄다.

한·일 월드컵 자원봉사원 심사 때의 일이다. 심사위원은 씨의 나이가 걱정돼 탈락시키려다 그가 내민 유도 2단증을 보고 "죄송하다"며 OK 도장을 찍어 주었다.

씨는 요즘도 매일 오전 5시30분에 일어나 집 근처의 초등학교에서 한시간 정도 자전거를 탄다. 일주일에 서너번 도장에 나가 운동을 한다.

또 자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의 노인대학에서 일본어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남을 미워하지 않고 욕심을 버리는 게 건강의 비결"이라며 "유도를 하면 사리사욕이 없어지고 정직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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