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문화 유산 지킴이 첸춘쉰과 코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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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이 있던 1941년 12월 7일, 미군 화물선 SS 프레지던트 해리슨호는 양쯔(揚子)강 하구를 벗어나는 순간 일본군 순시선의 공격을 받아 나포되었다. 당시 북평(北京)국립도서관 상하이(上海)사무소에서 일하던 첸춘쉰(錢存訓)은 이 소식을 듣고 깊은 안타까움에 잠겼다. 바로 두 달 전 그는 목숨을 건 모험을 감행하기 시작했다. 미 의회도서관과 상의하여, 중국의 귀중 고문서를 중일전쟁이 끝날 때까지 미국으로 옮겨 보관하는 계획을 일본군 점령 하에서 실행에 옮겼던 것이다. 첸춘쉰은 이렇게 회고한다.

"우리측 상하이 세관 검사관이 통관 업무를 담당하는 날에만, 고문서를 담은 나무상자를 10개씩 선적했다. 미 의회도서관이 신간 도서를 대량 구매하는 형식을 취했다. 3만여점의 고문서를 모두 실어보내는 데 두달 가까이 걸렸다. 하루 하루가 숨막히게 긴장된 날들이었다."

비운의 SS 프레지던트 해리슨호에는 12월 5일에 선적한 마지막 선적분이 실려 있었다. 6개월 뒤 첸춘쉰은 1백2개의 나무상자가 모두 미국에 도착했고 고문서를 마이크로필름 자료로 옮기는 작업이 시작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65년 미 정부는 고문서를 대만으로 보냈고, 84년에 대만 고궁박물관에서 고문서를 확인한 첸춘쉰은 눈물을 흘리며 감회에 젖었다.

한편 중국 국가도서관 측은 99년 12월 첸춘쉰(시카고대 명예교수)에게 최고훈장인 영예장을 수여했다. 비록 중국 본토가 아닌 대만에 있기는 하지만 귀중한 문화유산을 보전하는 데 기여한 노학자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한 것이다. 첸춘쉰은 대만에 대한 중국 당국의 고문서 반환 요구를 지지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나의 의무였다. 고문서들이 하루 빨리 고향의 품에 다시 안기기를 바란다."

1020년께 캔터베리 성당 필경실에서 어느 이름 모를 성직자가 만든 '율리우스 노동력'이 오늘날까지 남아있게 된 것은, 저명한 장서가 로버트 B 코튼(1571~1631) 덕분이다. 코튼 라이브러리는 유일하게 현존하는 『베어울프』 사본을 포함하고 있는 등, 영국에서 개인이 수집한 장서 컬렉션 가운데 가장 높은 가치를 지녔다.

헨리 8세가 수도원을 해산시키면서 수도원 소장 필사본들도 흩어지고 말았다. 코튼은 산일된 귀중 필사본들을 어렵사리 구해 자신의 서고에 보관했다. 당시 코튼의 노력으로 위기에서 벗어난 '율리우스 노동력'은 1000년께 영국인들의 일상 생활을 전해주는 중요한 사료며, 비슷한 종류의 문헌으로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기록문화에 관한 한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뒤지지 않는 훌륭한 전통과 유산을 지닌 오늘날의 우리는 어떠한가? 기록 문화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분명하게 인식하는 개인이 얼마나 될까? 그런 가치와 의미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국가적인 차원의 정리·보전에 힘쓰는 관계 당국자는 얼마나 될까? 병인양요(1866)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고문서에 대한 최초의 공식 실태조사를 얼마 전에야 마무리한 우리이고 보면, 대답이 궁해지기만 한다.

국내에 소개된 첸춘쉰의 저서로 『중국고대서사』(동문선)가 있으며, '율리우스 노동력'을 바탕삼아 중세 영국인의 일상을 재구성한 책으로 『중세기행』(청어람미디어)이 있다. '율리우스 노동력'의 라틴어 텍스트와 그 영역문은 『중세기행』의 저자 로버트 레이시의 홈페이지(www.robertlacey.com/press.htm)에서 입수할 수 있다.

<출판 칼럼니스트>

◇약력 ▶1969년생▶서강대 철학과 졸업▶KBS 1TV 'TV 책을 말하다' 자문위원▶한국전자책 컨소시엄 연구위원▶출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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