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대행 체제가 옳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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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장상(張裳)국무총리서리의 임명동의안 부결에 따른 후유증은 심각하다. 김대중 대통령이 총리'직무대행'을 두지 않은 탓이다. 총리 자리를 비워두는 것은 국정 공백에다 위헌 시비를 낳고 있다. 더구나 후임 총리지명자에게도 '서리' 꼬리표를 달아줄 작정인 것으로 알려져 위헌 논란을 청와대 스스로 키우는 기묘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정부조직법은 '사고'로 총리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경제부총리 등의 순으로 대행토록 규정하고 있다. '사고'란 휴가·해외여행 등 일시적 업무정지 상태라는 게 청와대의 해석이다. 때문에 부결 케이스는 사고에 들어가지 않으며 대행을 둘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임·사망으로 직무를 다시 맡지 못해 대행을 두는 '궐위(闕位)'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리 사고'의 범주에 '궐위'를 집어넣는 적극적인 법해석을 해야 한다는 게 헌법학계의 다수설이다. 청와대의 해석은 엄밀한 듯하나 상황을 지나치게 좁게 접근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법리논쟁에는 대통령 국법행위의 유효 문제까지 겹쳐 있다. 헌법은 '대통령의 국법상 행위는 문서로써 하며, 총리가 부서(副署)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총리 부서를 헌법상 의무 규정, 대통령 견제 수단으로 해석하는 쪽에선 총리 서명이 없는 대통령 결재는 무효라는 주장도 편다. 심지어 청와대의 대행 불가론을 놓고 국정 공백 부담을 정치권에 떠넘기기 위한 의도라는 의심도 있다.

金대통령은 총리직 부재(不在)를 둘러싼 국정 혼선을 빨리 정리해야 한다. 헌법과 법 조문의 정신과 취지는 대행 체제의 가동이다. 그것이 총리직의 위상을 명쾌하게 확인해주는 헌법 준수자로서의 기본 역할이다. 2년여 전 박태준 총리의 사임으로 대행을 뒀을 때도 이런 정신이 깔려 있었고 총리 인사청문회가 새롭게 도입된 이상관행이라고 둘러대기도 어렵게 됐다.

그런 맥락에서 새로 총리를 지명할 때 더 이상 '서리'라는 편법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장상 청문회'를 통해 서리제는 국민에게서 사실상 위헌 판정을 받은 셈이다. 그것이 공직문화의 청렴수준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은 인사청문회의 의미를 살리는 길이다. 서리가 아닌 후보단계의 지명자를 내놓고 국회 동의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지금의 위헌 논란을 마감하는 해답은 '대행 임명'과 '서리제 폐지'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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