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필 열풍’ 슈어링, 부천영화제 개막작‘엑스페리먼트’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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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연출 데뷔작에서 오스카상 수상 배우를 두 명이나 만나게 돼 정말 행운이었다”는 폴 슈어링 감독. ‘프리즌 브레이크’에서 ‘석호필’의 온 몸에 설계도 문신을 새겨 넣었던 그는, 이번에도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가슴에 인상적인 목걸이 문신을 선사했다. [연합뉴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이 감독이 감옥 소재로 영화를 찍었다니 호기심이 동한다. 폴 슈어링(42). 한국에 ‘석호필 열풍’을 일으켰던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제작자이자 크리에이터(각본 총책임자)다. 지난해 시즌4로 종영된 ‘프리즌 브레이크’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형을 구하려 천재건축가 동생이 감옥살이를 자청한다는 파격적 설정으로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슈어링 감독은 15일 개막한 제14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 ‘엑스페리먼트’로 내한했다. 그는 “‘프리즌 브레이크’ 방영 당시 웬트워스 밀러(마이클 스코필드 역)가 한국에서 ‘석호필’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웃었다.

그가 각본·연출을 맡은 ‘엑스페리먼트’는 2001년 개봉한 동명의 독일영화를 리메이크했다. 심리학 실험에 죄수와 간수 역할로 참가한 사람들이 점차 내면의 폭력 성향을 이기지 못하고 충돌하는 내용이다. ‘피아니스트’의 에이드리언 브로디, ‘라스트 킹’의 포레스트 휘태커 등 두 오스카상 수상 배우가 각각 죄수와 간수로 출연했다. ‘프리즌 브레이크’의 프로덕션 디자이너와 미술팀·촬영팀도 다시 뭉쳤다.

“감옥은 이 세상의 압축판이다. 권력투쟁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물론 이렇게 협소한 장소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건 여러모로 도전이다. 여행가방 안에서 영화 찍는 기분이랄까.(웃음) 훨씬 더 많은 상상력을 요구하는 일이었다.”

원작에선 실험자들이 감시카메라로 피실험자들을 지켜본다. 그는 이 부분을 카메라만 보여주는 걸로 바꿨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을 움직이는 힘이 이성이냐 본능이냐에 대한 물음은 여전하다. 그는 UCLA에서 했던 원숭이 실험 얘기를 꺼냈다. “원숭이 15마리 중 대장 원숭이에게 음식을 제일 먼저 먹게 하는 식으로 우선권을 줬다. 나머지 원숭이들은 처음엔 고분고분했다가 점점 달라졌다. 결국 2등 원숭이가 대장을 제압했다. 다시 시간이 지나자 3등이 2등을, 4등이 3등을 누르는 사이클이 반복됐다. 정치판이나 할리우드나 한국영화계나 마찬가지일 거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누군가를 지배해야 한다는 인간의 동물적 본능 때문이다. 궁지에 몰리면 인간의 99%가 폭력적 성향을 드러낸다는 건 역사가 보여준다.”

‘엑스페리먼트’는 제작비 1000만 달러(약 120억원)에 27일간 몰아찍은 할리우드 저예산영화다. 그럼에도 배우들의 폭발력은 대단하다. 특히 주인공 트래비스 역의 에이드리언 브로디는 간수들에 의해 머리를 변기에 처박히기도 하고 삭발도 당한다.

“촬영 당시 그는 목 뒷부분에 통증이 심했다. 그래서 변기에 머리를 처박거나 담벼락에서 떨어지는 연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역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 ”

간수 배리스 역의 포레스트 휘태커는 우물우물 씹는 듯한 음산한 말투로 인상적인 변신을 보여준다. “처음에 그가 대사하는 걸 들었을 때 소름이 끼쳤다. 감독은 마술사가 아니다. 연기 못하는 배우가 오면 어찌 할 재간이 없다. 두 사람은 그냥 각자 준비해온 연기를 펼치도록 내버려두면 됐다.”

죄수들의 폭동·탈옥 장면에서 ‘프리즌 브레이크’가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게나 말이다. 지금이 (스코필드가 다시 파나마 감옥으로 잡혀 들어가는 장면으로 끝나는) ‘시즌2’가 막 끝났을 때라면 안 그럴 텐데. (웃음)” 시즌4가 진짜 마지막이냐고 묻자 그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프리즌 브레이크’는 원래 시즌2로 끝났어야 했던 드라마였다.” ‘엑스페리먼트’는 다음 달 12일 일반 개봉한다.

부천=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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