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개혁이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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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북한 경제 변화의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그 요체는 가격 및 임금 체제의 개혁, 화폐경제 체제의 정착, 경제 주체의 책임제 강화 등을 통해 사회 전반에 경쟁 체제의 활성화를 유도해 파탄 경제의 회생을 목표로 한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은 지난해 '실리 보장''노동의 질과 양에 따른 보수''평균주의의 지양'이라는 원칙과 계획경제의 틀을 바탕으로 경제관리 개선 방안을 추진해 왔다. 이에 따라 마련된 구체안이 7월부터 시행된 것이라고 한다. 북한은 외부에서 이를 '시장경제 도입의 징조'라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하지만 개혁안은 '대담하고 혁신적인 것'(일본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임에 틀림없다.

우선 개혁안은 국가가 그동안 책임져온 인민 생활의 보장을 상당 부분 개인의 몫으로 돌렸다는 점이다. 그래서 북한 체제 유지의 골간을 이뤄온 배급제를 시장가격 체제로 현실화(쌀의 경우 5백50배 인상)했다. 그러자니 임금을 대폭 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산 노동자 평균임금이 18배 올랐고, 탄부는 노동자 평균임금 2천원보다 두배나 많은 6천원을 받게 됐다. 이러니 시장체제의 매개체인 화폐기능을 강화해야 했다. 유통이 거의 안됐던 5백원권의 공급을 대폭 늘리고 1천원 신권도 발행하는 한편 '외화와 바꾼 돈표'를 폐지하고, 환율을 현실화했다. 화폐경제 체제로 진입한다는 의미이자 개방을 대비한 포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개혁의 바탕은 생산 주체에 대한 자율권의 대폭 보장을 전제로 하고 있다. 1984년 도입됐으나 유명무실했던 '독립채산제의 올바른 실시'가 그것이다. 공장이든 기업소든 생산 주체는 '번 수입에 의해 평가'를 받는 체제로 전환된다. 농민도 예외가 아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본주의사회의 경쟁 원리가 본격 도입된다는 의미다. 생산의 극대화를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개혁은 임금과 가격의 결정권이 시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가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는 여전하다는 점에서 한계성이 있다. 게다가 공장이나 기업소의 경우 독립채산제의 기초인 운영 자본이 독자적으론 사실상 없고 전력 등 사회간접자본이 열악하다는 약점이 있다. 기업소든 농장이든 생산과 판매의 자기관리 체제를 확립할 수 있는 여건이 매우 불충실하다. 따라서 북한이 생산 현장의 이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선 남쪽을 포함한 외부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북한이 서해교전의 남쪽 도발론을 거두고 사과한 배경도 이런 정황과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 경제 개혁이 제대로 성공하려면 대남정책을 쇄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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