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 음악회 함께 연 목사와 승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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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일철 스님·임의진 목사

"생명을 가진 사람과 나무·돌·물이 함께 대화하는 공간. 이게 바로 우리가 바라는 천국이요, 극락세계요, 유토피아입니다. 종파를 초월해 그런 자리를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절 주차장 3백여평을 녹색공간으로 꾸며 매달 보름 자연 속의 작은 음악회와 이야기 마당을 펼치기로 한 광주시 무등산 자락의 증심사(證心寺) 주지 일철(一徹)스님.

그는 첫 행사 '풍경소리1'을 지난 24일 밤 무등산 아래에서 4백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었다. 행사장에선 스님·천주교 신부·원불교 교무 등 성직자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이날 행사는 전남 강진 '참꽃 피는 마을 남녘교회'의 임의진(任義眞)목사의 사회로 1시간20분 동안 진행됐다. 무대는 주차장 한켠에 자연석을 쌓고 흙을 돋아 만들었다. 강원도 대관령에 은둔하고 있는 가수 김두수씨가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 앞에 나서 기타를 치며 노래했고, 장흥에 내려와 글을 쓰고 있는 소설가 한승원씨는 시 같은 동화를 들려주었다. 한 중년 남자는 풀피리 연주를 했다.

일철 스님은 "주차장의 아스콘 포장을 걷어낸 뒤 잔디를 깔고 들꽃을 심어 개방하고, '풍경소리'행사를 다양한 프로그램과 형식으로 매월 보름날 밤에 열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일부 신도들이 불편을 우려해 반대했으나 '무등산을 숨쉬게 하고 시민들에게 돌려주는 것 또한 참다운 보시'라며 설득했다"고 말했다. 1975년 출가한 일철 스님은 87년부터 10여년간 미국에서 공부하며 포교활동을 했다. 귀국 후 조계종 총무원 재무부장·문화부장·기획실장과 불교신문 주간을 지냈고 지난 5월 증심사 주지가 됐다. 그는 지리산 댐 건설 반대운동을 이끌었으며, 생태계를 혼란시킨다며 방생법회를 중지하는 등 환경운동에 앞장서 왔다.

이날 사회를 본 任목사의 세례명은 어깨춤이다. 그는 예배를 시작할 때 징을 치며 찬송가로 '광야에서''서울에서 평양까지' 등 가요를 부른다.

또 교회 용어를 순수한 우리말로 바꿔 쓴다. 기도는 비나리로, 예배는 기림으로, 신도는 믿음이로 바꿔 부른다. 전국 각지에 친한 스님을 많이 둔 그는 평소 불가(佛家)용어를 스스럼없이 쓴다. 任목사는 "모든 종파가 벽을 허물고 생명과 자연에 대해 함께 생각하는 자리에서 출연자와 관객 사이의 고리 역할을 해 기쁘다"고 말했다.

광주=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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