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내면서 꺼낸 '악마의 광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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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독일 뉴 저먼시네마 운동을 주도했던 베르너 헤어초크(60)감독의 대표작 '아귀레, 신의 분노'(1972년)가 다음달 2일 개봉된다. 영화는 불협화음을 연속해서 들려줌으로써 신경을 자극해 자백을 받아내는 고문 기법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 내면에 숨어있는 악마성이 발현되는, 그 징그럽고 처참한 광경을 건조하면서 생생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를 돕는 것은 고요함이다. 여백이 의도적으로 과다하게 남겨졌을 때 더이상 아름다움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이 영화는 정적을 통해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별다른 효과음 없이 관객의 눈 앞에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비극은 지루함을 넘어 팽팽히 당겨진 활과 같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 영화는 1570년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찾아 떠난 스페인의 장군 아귀레(클라우스 킨스키)의 모험담이다. 이들과 동행한 한 신부의 일기 형식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탐험대를 되돌리려는 대장 우르수아(뤼 게라)에게 맞서 반란을 일으킨 부대장 아귀레는 자신이 신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지는 곧 '신의 분노'이고 자신이 밟는 땅조차 자신을 보면 벌벌 떤다고 주장한다. 굶주림과 질병으로 병사들이 하나둘 쓰러져가고 모습을 감춘 채 쏘아대는 원주민들의 화살에 떼죽음의 위기에 처할 때까지 그의 발작은 더해만 간다.

영화 막바지, 아귀레 혼자 남고 원숭이떼가 끽끽거리며 녹슨 대포 옆을 맴도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원숭이는 끝을 모르고 치달은 아귀레의 광증으로 인해 자취를 감춘 인간성과 그 잔해의 참담함을 가리키는 상징물이다. 아귀레를 연기한 클라우스 킨스키는 나스타샤 킨스키의 아버지로도 잘 알려진 성격파 배우다. 그는 아귀레가 단순히 과대망상증 정신병자가 아니라 순수함의 극단을 추구한 투쟁적 인물로도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하는 생애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프랜시스 코폴라의 걸작 '지옥의 묵시록'(79년)의 원형이 되기도 했다. 수입사 백두대간은 매일 2회째마다 '지옥의 묵시록-리덕스'를 같이 상영한다. 12세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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