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그리스, 그래서 그리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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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이상은 기자

경제위기와 시위로 연일 입에 오르내리지만 현지에서 본 그리스의 모습은 평온했다. 조심스레 꺼낸 “한국인”이라는 말에도 그리스인들은 하나같이 “코리아 풋볼, 굿!” 을 외치며 웃었다.

지난달 20일 그리스 아테네에 도착했다. 한국팀이 일찌감치 그리스팀을 격파한 뒤였다. 시내로 들어가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시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월드컵 때문에 한국에 감정이 안 좋은 것은 아닌지 살짝 걱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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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짐을 풀고 아테네 중심부인 신타그마 광장으로 나갔다. 광장은 경제위기라는 상황이 무색할 만큼 붐볐다. 광장의 타베르나(그리스 전통음식점)뿐 아니라 근처 플라카 시장도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발길을 돌려 아테네에서 가장 럭셔리한 곳이라는 콜로나키 거리로 갔다. 명품 매장들이 줄지어 들어선 곳으로 관광객보다는 현지인들이 더 많이 이용하는 곳이라고 했다. 거리는 한산했다. 들어갔던 카페의 사장 디미트리스 야니스(42)는 “경제위기가 불거진 뒤 거리 전체적으로 손님이 지난해보다 30% 줄었다”며 “요즘 장사하는 친구들끼리 모이면 정부 욕을 한다”고 했다.

“그래도 지난달 구제금융이 확정됐으니 괜찮아질 거예요. 시위야 고대 그리스 때부터 항상 해 왔던 거고….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공무원들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지만, 곧 상황이 좋아질 거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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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그리스인들은 한밤중에도 타베르나에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는 말을 확인하려고 다시 신타그마 광장 주변으로 나갔다. 낮보다 붐볐다. 늘 하던 대로 식사를 하는 현지인들과 그 분위기에 동화되고 싶은 관광객들이 뒤섞여 있었다. 수블라키(그리스식 꼬치구이)를 먹던 데메테르 알렉시우(33) 일행과 합석했다. 공무원이라는 그들은 “경제위기 이후 안 좋아진 건 정부가 세금을 많이 거둬 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 빼곤 똑같아요. 정부에서 치안을 강화해 줬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안전해졌고요.”

그리스는 평온했다. 번화가는 밤낮을 불문하고 관광객으로 붐볐고 사람들은 낙천적이었다. 텅 빈 명품 거리와 어느 동네든 곳곳에 10여 명씩 배치된 경찰을 보면서 이곳이 재정위기로 나름의 내홍을 겪고 있다는 걸 기억해 낼 수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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