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경제 view &

한국 사정 맞는 환율 제도 연구할 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반면 중국은 위안화 절상으로 인한 미국 내 물가 상승 탓에 미국의 일반 국민들이 모두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맞섰다.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는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적인 선동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다.

게다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향후 5년간 미국의 수출 규모를 두 배로 늘리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지자 중국은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중국은 미국의 그런 움직임이야말로 중국을 겨냥한 보호무역주의라고 극도로 경계했다. 동시에 위안화 문제는 국내외 경제상황을 감안해 중국 스스로 결정할 것이며, 외국의 압력에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세를 견지했다. 추측하건대 중국이 진정으로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환율절상이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환율제도를 정부 주도의 실질적 고정환율제로부터 시장변동환율제로 개혁하라’는 미국의 꾸준한 압박일 것이다.

한때 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미·중 분쟁이 원만히 해결되지 못할 경우에는 양국 간의 무역전쟁이 발발할 일촉즉발의 가능성마저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티머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이 환율조작국 지정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꺼내들고 지난 4월 이후 몇 차례나 중국을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것은 포기했다. 이로써 중국과 미국의 환율분쟁은 일단 극단적인 충돌을 피한 채 수면하로 잠복하게 됐다.

사실 이제까지 미국은 일본이나 한국 등을 상대로 환율 절상이나 환율제도의 개편을 촉구하는 협상에서 큰 충돌 없이 합의를 이끌어낸 경험이 있다. 특히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과의 환율협상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제조업 부문의 월등한 경쟁력을 앞세운 일본 경제가 세계 2위로 커졌을 때의 일이다. 당시 미국은 일본의 무역흑자를 축소시킬 목적으로 세계무역의 불균형 해소라는 명분 하에 대폭적인 환율 절상을 수용하도록 일본에 압박을 가해 관철시킨 바 있다. 그런 영향도 있었기에 그 후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라고 하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런 압박은 우리나라에도 밀려 왔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돼 무역제재를 받을 위험을 고려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시장변동환율제를 전면 도입한 바 있다. 환율의 변동성 확대로 인한 위험과 부작용을 지적하는 반대론자들도 있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땠나. 공교롭게도 환율을 사실상 달러에 고정시켜 온 중국·대만·홍콩·싱가포르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로 수많은 국민이 고통을 겪었다. 또 2008년 초 투기적인 서방 금융회사들의 버블 경영으로 초래된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이웃나라들에 비해 우리는 상대적으로 큰 어려움을 감당해야만 했다. 다행히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응해 수습을 잘 했기에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다.

최근 금융연구원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환율 변동성은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원화는 기축통화도 아니고 국제결제통화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처럼 변동성이 크다는 것은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에 따른 위험에 우리 환율이 그대로 노출돼 언제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외환당국이 할 일은 분명하다. 단기적으론 환율 변동성을 완화시키기 위한 정책적인 노력과 함께, 근본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사정에 적합한 환율제도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택수 국제금융센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