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세 여류시인 박종숙씨 숙대 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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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면접 때 자기 소개를 해보라는 교수님의 질문을 받고 힘들었던 성장기가 떠올라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흐르더군요. 제대로 말도 못하고 나온 탓에 떨어진 줄 알았습니다."

23일 발표된 숙명여대 1학기 수시모집에서 특기적성 우수자전형으로 인문학부에 합격한 여류시인 박종숙(朴鍾淑·44·사진·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씨는 합격 소식에 다시 눈물을 글썽거렸다.

朴씨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서울 봉천동 오목초등교 3학년을 끝으로 학업을 그만둬야 했다.

"열네살이던 해 월남전에 참전했던 오빠가 상이군인이 돼 돌아오자 충격으로 아버지는 몸져 누우셨고, 저는 연탄값이라도 벌기 위해 스웨터 공장의 잔심부름꾼으로 나가게 됐습니다."

이후 방직공장·전자제품공장·새마을금고 등을 전전하면서도 독학으로 시인의 꿈을 키웠다.

여성지 등 잡지에 실린 그의 작품을 눈여겨 본 황금찬·성춘복 시인이 추천해 1992년 '시대문학' 여름호에 '성내천을 바라보며' 등으로 등단, 꿈꾸던 시인이 됐다. 지금까지 '낯선 땅에서 낯선 곳으로' 등 시집 4권을 냈으며 99년엔 '울음의 노래'로 제15회 윤동주문학상 우수상을 받았다.

학업의 꿈을 접지 못한 朴씨는 초등·중등 검정고시를 차례로 통과한 뒤 2000년 서울 신동신정보산업고교에 입학,대입에 도전했다. 서울시청 공무원인 남편 안무달(50)씨는 한문·윤리 과목을, 서울대 대학원에 다니는 딸 세정(22)씨와 연세대 인문학부 1학년인 아들 정환(19)군은 수학·과학 과목을 가르쳐 주며 아내와 엄마를 격려했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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