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시아 대재앙] 김홍국씨 가족 생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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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1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 입원 중인 김홍국(48.회사원)씨는 태국 피피섬에서 당한 해일의 악몽에 아직도 떨고 있었다.

부인, 두 딸과 함께 22일 피피섬으로 관광을 떠났던 김씨는 "사고 당일인 26일 파도가 유난히 높은 것이 이상했으나, 대수롭게 여기진 않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날 오전 10시30분쯤 김씨가 리조트 1층 카운터에서 방을 예약하려는 순간 수십명의 외국인이 '도망치라'고 소리치며 뛰어들었다. '테러가 났구나'하는 생각에 큰딸(13)의 손을 잡고 뛰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바이킹을 탄 것처럼 떠오르며 건물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이내 온몸에 몽둥이로 맞는 듯한 고통이 전해져 왔다. 물살에 휩쓸리며 수도 없이 바위 등에 부딪쳤다.

꼭 쥐고 있던 큰딸의 손도 놓쳤다. 눈과 코로 물이 쏟아져 고문을 당하는 듯한 고통이었다.

10여분쯤 뒤.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사람들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고, 울음소리와 비명이 이어졌다. 김씨 본인도 피투성이였다.

아수라장이 된 그곳에서 부인과 딸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울음이 터져나왔다. 물이 약간 빠지면서 가족을 찾아 헤매던 김씨는 건물 꼭대기로 미리 대피해 있던 가족들과 재회할 수 있었다.

안도감도 잠시뿐, 해일경고 방송이 또 이어졌다. 인근 6층 건물로 다시 피신한 김씨 가족은 다음 날 새벽 김씨가 태국 크라비 지역의 병원으로 이송될 때까지 10여시간 동안 서로의 몸을 커튼으로 묶고 '해일의 공포'를 견뎌야 했다고 한다.

김씨는 30일 가족과 함께 특별기편으로 귀국해 다리 부상을 치료받고 있다. 그는 "피피섬의 피해 현장을 목격했다면 가족 4명 모두가 살아난 것은 기적이라고 표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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