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입은 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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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이한동씨에겐 오랫동안 간직해온 꿈이 있다. 대권을 향한 꿈이다. 남들은 무모하다할지 모른다. 객관적 정황은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도전하려 한다. 이회창 후보의 대항마가 되고 싶어한다.

이한동과 이회창. 두 사람은 원래 야자하는 친구 사이다. 나이는 이한동씨가 한살 많다. 하지만 이회창씨가 서울대 법대를 한해 먼저 들어갔고 고시는 두 해 먼저 됐다. 두 사람은 서울지법 판사 시절 같은 방에서 근무했다. 11명의 판사가 한 방을 썼다고 한다. 그뒤 이한동씨가 영등포 지청 부장검사를 할 때 이회창씨는 영등포 지원장을 했다. 두 사람은 함께 어울렸다. 포커도 하고 술깨나 마셔댔다. 버스값이 떨어질 때까지 술을 마신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종종 두 사람은 걸어서 성북동 이회창씨 집으로 갔다. 마당에 서서 이회창씨는 외쳐댔다.

"여보, 맥주 주시오."

한인옥씨는 쟁반에 맥주를 올려 들고 나왔다. 두 사람은 선채로 맥주를 들이켰다. 병째로 들이켠 이한동씨는 다시 걸어서 미아리 집으로 가곤했다.

두 사람은 정말이지 허물없는 사이였다. 서로의 고민을 털어놓았고 나라걱정도 함께했다. 이회창씨는 이한동씨에게 많은 덕담을 해주었다.

"너는 크게 될 사람이니 정치를 해라."

"너도 정치를 하지 그러니."

이회창씨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면서 아버지 얘기를 했다고 한다. 정치를 하면서 이것 저것 들춰지는 게 싫다고 했다. 이회창씨의 덕담대로 이한동씨는 정치를 했다. 두 사람은 각자 다른 길을 걸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다시 마주친 곳은 신한국당이었다. 친구의 모습이 아닌 라이벌로 만났다. 꿈은 같았고 이해는 달랐다. 대권의 꿈은 두 사람을 갈라놓았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YS의 얘기.

"97년 3월 나는 이한동이를 신한국당 대표에 임명하려 했어. 그런데 발표를 앞두고 그것이 MBC 9시 뉴스 톱으로 보도됐어. 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야. 만약 그때 이한동이를 대표시켰으면 이한동이가 대통령 후보가 되는 거고 DJ는 대통령이 못되는 건데."

이회창씨의 반발때문이었다. 현철씨 사건 와중의 YS로선 어쩔 수 없었다. 당 대표직은 이회창씨가 가져갔다. 이회창씨는 이후 총재가 됐고, 이한동씨는 그 밑에서 대표를 했다. 그러나 이한동씨는 거의 태업을 하다시피했다는 게 이회창씨 쪽 사람들의 얘기다. 그들은 지금도 그때의 이한동 대표를 비난한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는 정적(政敵)의 입장으로 바뀌었다. 이제 두 사람은 철저히 서로를 깔보고 무시한다. 서로를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인 듯하다. 이회창씨 측근에게 물어봤다.

"이한동씨가 이회창씨 대항마가 된다면 어떻겠어요?"

"그렇게 된다면야 우리로선 참으로 고맙지요."

우습게 본다는 얘기였다. 그게 이회창씨의 생각이라고 했다. 이한동씨 역시 이회창씨를 비슷하게 평가한다. 아주 편협한 사람으로 본다. 그래서 자기도 한나라당에서 쫓아냈다는 것이다. 이한동과 이회창. 두 사람 사이에 이제 우정의 흔적은 없다. 상처입은 우정은 막연한 증오보다 더한 미움인가 보다.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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