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 외도도 좋지만 가수는 노래가 본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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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가수 A의 음반도 하루 몇십 장밖에 안 나간대요…(한숨을 몰아 쉬며 허공을 본다). 다른 길을 찾아 봐야 하나." 월드컵이 끝나도 다소 썰렁한 방송사 회의실에서 모처럼 얼굴을 마주한 어느 음반 기획자의 말이다.

'뜨겁고도 붉은 6월'을 보내고 우리들은 일상을 되찾고 있다. 그러나 가요계는 잃어버린 생기를 되찾을 것 같지 않은 모습이다. 축구 열기가 휘몰아쳐 지나간 후에도 이렇게 주춤거리면서 사람들과 대면하고 있는 것이다.

가수 박지윤은 요즘 고민에 빠졌다. 음반활동을 마친 요즘 여느 때라면 다음 음반을 준비할 때인데 드라마와 영화 출연 결정에 고민 중이다. 홍콩영화 대본과 우리나라 미니 시리즈 대본몇 편, 그리고 우리 영화 시나리오 몇 편을 읽으면서 음악공부는 잠시 뒤로 미루어 두었다. 핑클의 옥주현도 곧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MC로 나설 예정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많은 코너가 '드라마타이즈'로 이루어졌던 때가 있었다. 1990년 중·후반의 '테마게임''인생극장'등이 대표적이다. '유행의 바람'이 시절을 바꿔 가수들의 드라마 출연으로 옮겨간 것일까. 가수들의 외도는 드라마뿐이 아니고, 물론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가수들이 외도를 하겠다고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음반시장의 위축이다. 불경기가 아니라 거의 공황 수준이라고 한다. 가요계의 경우 인기의 부침이 유난히 심하고 음악에 대한 기호 또한 봄 날씨 변하듯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 판에 요즘 들어 음반 판매량 전체의 파이가 급격히 줄어 버렸다. MP3 때문이라고 한다. 거리의 또 다른 황제 '길보드'라고 불린 길거리 리어카마저 거의 사라진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또 다른 요인은 인력의 이동경로다.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유명한 탤런트들은 다들 영화로 옮겨갔다. 대체재로 인한 시장 메커니즘이 연예시장에도 작용한 것이다. 그 공백을 가수들이 메우려 나섰다. 그들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드라마 OST 시장까지 진출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원인은 보다 본질적인 데 있지 않을까 싶다. 대중문화에서 음반은 자판기 음료수마냥 마셔서 없어지는 소비재가 아니다. 갖고 싶을 정도로 작품성이 있는 음반이라면 사람들은 기꺼이 음반을 구매해 소장할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콘텐츠', 즉 음반이 담고 있는 음악에 있다는 의미다.

'테마게임' 등에서 카메오로 흔쾌히 출연한 가수들의 낯설지만 유쾌한 연기가 떠오른다. 그들의 진지한 열정으로 인해 곳곳에서 터져 나오던 웃음보를 참고 촬영을 계속하던 지난날 말이다. 그러나 그 기억은 이제 스크래치(흠집) 생긴 옛날 영화를 보듯 아득하다.

가수는 누가 뭐래도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가장 아름답다. 본인들도 그렇게 믿고 있다. 그래서 가수 장나라는 오늘도 연습실에서 새우잠을 자며 2집 음반 녹음을 하고 있다. "세상에서 노래 부를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하면서.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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