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따로 경제 따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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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힘이 빠진 정부, 진흙탕 속의 정치, 그리고 분열된 국론을 야기한 주범으로 현 정부의 인사정책을 꼽는 이들이 많다. 이번 개각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지만 전에도 능력보다 지연이나 정실을 앞세운 인사가 빈번했다는 비난이 거세다. 그렇게 임명된 사람들이 실세를 이루다 보니 결국은 대통령 아들들이 비리에 연루돼 구속되는 일까지 벌어졌고 임기 말 통치권 누수현상이 가속화됐다는 것이다.

파급효과는 행정부문에만 그치지 않고 정치 전반에 확산되면서 국회는 공전을 거듭해 '식물국회'라는 별명까지 얻게 됐다. 그나마 열렸다 해도 민생법안에 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서도 경제는 올 들어 호조를 보이고 있다.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5.7%에 달했고 한국은행 전망으로는 하반기 성장률도 6.8%에 이를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정치가 엉망이라도 경제는 이와 무관하게 성장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것인가, 경제나 행정이나 반드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맡아서 하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는 것인가, 지금의 경기 상승국면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이런 의문들이 자연스럽게 제기될 수 있는 상황이다.

먼저 정치와 경제의 상관관계부터 짚어 본다면 단기적으로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정치가 안정돼 있더라도 경제는 죽을 쑤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정치가 불안해도 경제쪽 실적은 양호한 사례들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단기로는 정치와 경제가 따로 놀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시각에서 보면 정치의 안정과 발전 없이는 경제의 안정과 성장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겠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일본이다. 근면 성실하고 저축 많이 하면서 정부정책에 협조하기로 세계에서 거의 으뜸가는 국민이 일본인이다. 그러나 후진국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정치행태가 국민과 경제의 발목을 잡다 보니 일본 경제는 10년 이상을 불황의 구렁텅이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비슷한 얘기가 고위공직자의 능력과 경제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통할 것 같다. 일류급 인재의 업적과 정실인사로 임명된 이류·삼류의 실적이 겉보기로는 다를 바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용면에서는 차이가 있는 법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그 격차가 벌어지고 드러날 것이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는 일단 경제가 크게 호전된 것으로 상정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성장률 등 겉모습을 나타내는 거시지표를 중심으로 판단한 것이다. 기업이나 산업의 경쟁력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한 성장 내용을 보면 소비와 건설 및 서비스업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안의 소지가 있다. 투자와 수출이 뒤따라 주지 못한다면 경기회복세는 단명에 그칠지도 모른다. 소비와 건설업의 호조는 지난해 말까지 정책당국이 밀어붙인 경기부양책의 결과다. 무엇보다 시중에 돈이 넘쳐 금리를 낮은 수준에 매어 둔 때문이다. 가계대출이 급격히 늘어나 소비를 직접 부채질했을 뿐 아니라 주식이나 부동산가격까지 밀어붙였다. 이것이 다시 소비를 부추기고 건설업의 활황을 불러왔던 것이다.

내년 이후의 경제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가계와 정부의 빚이 경제에 큰 짐이 될 것이고 그것을 줄이자면 소비와 정부지출이 위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 경제의 불안, 가파른 원화 절상, 금리와 물가의 상승 압력, 노사갈등 등 대내외 복병들도 만만치 않다. 정치적 불안까지 계속된다면 경제는 다시 뒷걸음질 칠 우려가 있다. 길게 보아 경제가 정치나 인사와 따로 놀 수는 없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국민들은 다가올 선거에서 보다 신중한 자세로 후보자들을 평가하고 선택할 것이다. 리더십 등 능력이 가장 뛰어난 지도자를 뽑아내고 그가 다시 사심없이 최상급의 인재를 등용해야 정치와 경제의 안정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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