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 기도'에도 무덤덤한 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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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프랑스는 참 재미있는 나라다.한 극우파 청년의 손에 대통령이 암살될 뻔했는 데도 나라 전체가 무덤덤하다. 그저 다친 사람이 없으면 된 것 아니냐는 투다.

TV도 첫 뉴스로 보도하긴 했지만 사실만 전달할 뿐 호들갑은 없다. 사소한 일로 국민의 축제 기분을 망칠 수는 없다는 분위기랄까.경호문제에서부터 시작해 한바탕 굿을 치렀을 우리네 현실과는 너무 다르다.

정황으로 볼 때 국제적인 테러나 조직적인 암살음모라기보다 단순한 해프닝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25세의 극우파 청년 막심 브뤼느리가 22구경 소총을 겨눈 장소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탄 무개 지프로부터 1백여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시라크 대통령은 느끼지 못했다지만 함께 승차한 요원들은 총알이 날아가는 소리를 들었다는 전언이다. 탄창에도 실탄 다섯발이 가득 채워진 상태였다. 다행히 옆에 있던 시민들이 합심해 그를 제압하지 않았다면 2차,3차 사격도 가능한 상황이었다.

브뤼느리는 체포된 뒤 "시라크를 제거한 뒤 자살하려고 했다"고 했다. 그냥 웃고 넘길 수 없는 명백한 암살 기도였다.

그럼에도 무덤덤하기는 당사자인 시라크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혁명 기념행사를 마친 뒤 각계 인사들을 초청한 축하 가든파티 자리에서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보고를 듣고서야 자신에 대한 암살 기도를 알았다.

시라크 대통령의 반응은 "아, 그래요?"가 전부였다는 게 사르코지 장관의 설명이다. 더 이상 캐묻지도 않고 등을 돌려 초청인사들을 접견했다.

하마터면 프랑스 역사상 가장 불행한 날이 될 뻔했던 14일 혁명기념일은 그런 식으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갔다.

이날 밤 파리에서는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불꽃놀이 축제가 있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시민들은 프랑스가 자랑하는 대문호 빅토르 위고에 헌정된 불꽃놀이에 빠져들었다.

몇몇에게 오전의 대통령 암살 미수 사건에 대해 물어봤다. 대부분 외국인이 그런 데 관심을 갖는 게 신기하다는 반응이다. 그 중 한명의 대꾸는 시라크와 똑 같았다."아, 그래요?" 정말이지, 참 재미있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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