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대통령 기자간담회 일문일답]"아들문제 사전보고 못받아 유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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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5일 청와대 대회의실에서 있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출입기자 간담회는 3개월 만에 이뤄졌다.

질문 내용을 놓고 청와대와 기자들 사이의 사전 조정은 없었다. 金대통령은 "남은 7개월의 임기 동안 흔들림 없이 국정의 중심을 잡아나가겠다"며 강한 의욕을 표시했다.

그는 또 "연말 대선과 8·8 재·보궐선거를 중립적으로 공정하게 관리하는 것"을 국정의 제1과제로 제시했다."퇴임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으냐"는 질문엔 "아직 임기가 많이 남았다"고 받아넘겼다.

인터넷 인기품목 중의 하나인 '엽기DJ'를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엔 "들어본 적 없다"며 웃었다. 장상(張裳)총리서리 지명과정에서 이희호(姬鎬)여사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질문에도 소상히 설명했다.

金대통령은 그러나 홍업(弘業)씨 등 아들 문제가 나오자 고개를 떨구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여러 테이블에 나눠 앉아있던 청와대 수석 중 일부는 눈물을 흘렸으며, 헤드 테이블에 있던 박지원(朴智元)비서실장·안주섭(安周燮)경호실장은 얼굴을 돌렸다.

서해교전 사태를 거치면서 金대통령의 북한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 대한 인식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주목케 하는 발언도 나왔다.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북한과 대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조하면서도 북한의 사과나 책임자 문책이 없는 데 대해 언짢아했다.

다음은 1시간50분간의 일문일답.

◇아들 문제와 아태재단

-홍업씨가 기소된 후 대통령의 직접 언급이 없었다. 소회는.

"과거 야당생활하면서 다섯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고,6년 감옥살이를 했지만 지금처럼 참담한 심정을 느낀 적이 없다. 사실 월드컵에 응원하러 나갈 때도 발이 천근같이 무거웠다. 무슨 낯으로 우리 국민을 볼 수 있는가. 대통령이니까 할 수 없이 손을 흔들면서도 얼굴에 철판을 깐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 내외가 같이 앉아 말을 잃고 몇시간씩을 그냥 있었던 때도 있다. 한 순간도 마음이 편한 적이 없었다. 자식들에 대해 법이 진실을 밝혀 죄가 있으면 엄정하게 처벌하는 데 조금도 이의가 없다. 다만 내 자식의 구속이 우리나라 부패척결에 도움이 된다면 그나마 만분지일이라도 다행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아들 문제와 관련, 사전에 정보를 보고받은 적이 있는지. 보좌진들의 책임도 상당히 있는 것은 아닌가.

"사전 정보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 이것은 나도 참으로 유감으로 생각한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도 있는데, 지금 제도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생각하는 중이다. 특히 친인척에 대해 엄중한 감시체제가 있어야 하겠다. 이번에 보니까 너무 소홀한 점이 있어 많이 반성하고 있다. 지금 구체적인 안을 작성하도록 지시했고, 머지않아 구체화할 작정이다."

-법무부장관 교체와 검찰수사에 여러 가지 말이 있었다.

"검찰수사에 대해 내가 지금 논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법무부나 검찰이 모두 법에 의해 처리했다고 믿고 있다. 앞으로도 엄격하게 모든 것을 처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검찰이 어느 사건은 철저히 하고, 어느 사건은 적당히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현직 국정원장이 홍업씨에게 돈을 줘서 문제가 되고 있다.

"그 분들이 개인적으로 자기 돈을 줬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아들인 내 자식에게 아무리 개인 돈을 주었어도 돈을 받은 것은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김홍일 의원의 아버지로서 그의 거취 문제에 대한 생각은 어떤지.

"金의원은 내 자식이지만 공적인 국회의원 자리에 있다. 헌법기관이고 선거구민이 선출한 것이다. 본인이 그러한 점에서 주체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 생각한다."

-아태재단을 해체할 용의는.

"아태재단은 완전한 공익재단으로 어떤 개인도 권리가 없다. 현재 운영자금이 없어 경영은 사실상 휴식상태다. 그러나 내 자식과 기타 간부가 비리에 연루된 만큼 도덕적·사회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내가 법적 권한은 없으나 재단 창설자로서 현재 이사분들과 상의해 정치적으로 전혀 색채가 없고, 내가 재단에 관여하지 않는 쪽으로 완전히 새출발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

◇서해교전

-북한 김정일 위원장에게 여전히 신뢰감을 갖고 있는지.

"서해도발 사태를 金위원장이 지시했는지 여부는 지금 우리가 확실히 단언할 자료를 충분히 갖고 있지 않다. 金위원장이 지시했다면 남북 공동성명을 위배한 중대한 문제고, 지시를 안 했는데 일어났다면 북한의 통제가 유지되지 않는 것으로 위험한 문제다. 그러나 우리가 전쟁을 하지 않는 한 남북문제에 있어 표현이야 뭐라고 하든 화해협력의 길로 가다가 어느 땐가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정책을 안할 수 없다."

◇장상 총리서리 지명

-장상 총리서리는 누가 추천했는가.

"張총리서리는 나 자신이 잘 안다. 저희 아내 얘기를 하는데, 내가 장상 총리서리에 대해 아내에게 '내가 이렇게 하고 싶다'고 얘기한 것은 사실이다. 또 아내도 그를 좋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주도적으로 결정했고, 내 지시에 의해 비서실장이 張총리서리를 접촉했다."

-정치권의 개헌논의에 대해선.

"개헌에 관한 의견은 있다. 그러나 지금 말하는 것은 적합치 않다. 퇴임 후 필요하면 의견을 말씀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는 관심도 있다."

-정치권 협조를 받기 위해 대선후보나 당 대표들과 만날 계획은 없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여서 모든 것을 신중히 처리하고 있다. 국가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분위기가 잡힌다면 언제든지 적극적으로 만날 생각을 갖고 있다."

전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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