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성가신 존재'로 보는 중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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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한을 지켜보는 중국의 시선이 '혈맹(血盟)'에서 '성가신 존재'로 변해가고 있다. 특히 지난달 말 발생한 서해교전과 탈북자들의 잇따른 망명사태가 이같은 변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중국의 시각교정은 북·중관계의 미묘한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베이징(北京)주재 외국 대사관에서 발생한 일련의 탈북자 망명 사태는 중국 당국을 당혹스럽게 한 사건이었다. 사건 발생 직후 중국은 베이징 주재 외교 공관의 경비를 대폭 강화했다. 또 탈북자를 돕는 남한과 외국 선교사들을 적발했으며 북·중 국경 단속도 강화했다. 그러나 중국 스스로가 탈북자 문제는 계속될 것이고, 북·중 국경을 완전무결하게 봉쇄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중국은 또 지난달 말 발생한 서해교전 당시 서울과 평양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 중국은 이번 사건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려 했다. 아마 서해교전은 2008년 올림픽을 준비 중인 베이징에 잠재적 위협이 바로 이웃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을지도 모른다.

북한을 '성가신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한 중국인들의 심기(心氣)가 물론 정책으로 공식화한 상태는 아직 아니다. 그러나 중국관리들 사이에는 평양에 대한 광범위한 경멸감과 우려가 존재한다. 중국인들이 우려하는 것은 평양이 너무 정권유지에만 급급한 나머지 자체 개혁의 타이밍을 놓쳐 결국 북한정권 붕괴로 이어지는 시나리오다. 이 경우 남북한은 서울의 의사와 관계없이 1989년 동·서독처럼 갑작스런 통일과정에 들어갈 수 있다. 중국은 지금처럼 주한미군이 남한에 주둔하는 상황에서 남북이 통일되는 것을 대단히 우려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을 상대로 활발한 외교를 펼치고 있다. 중국은 김정일(金正日)위원장과 직통 채널을 확보하고 있는 몇 안되는 국가다. 중국이 그동안 북한의 핵 및 미사일문제를 활용해 미국으로부터 이런저런 양보를 끌어낸 것도 사실이다. 또 중국은 체제 유지를 위해 북한에 식량·석유 그리고 비료를 지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양에 대한 베이징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그 좋은 본보기가 지난해 1월 있었던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 방문이다.

당시 金위원장은 상하이(上海)와 선전(深?)을 돌아보고 "천지개벽했다"고 감회를 털어놓았다. 그러나 아직 북한이 본격적인 개혁을 추진한다는 뉴스는 없다. 정권 유지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 金위원장에게 개혁은 너무 위험한 카드인지 모른다.

단기적으로 북·중관계는 과거의 관성(慣性)에 따라 굴러갈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중국 지도부 자체가 권력 개편기를 맞아 평양에 신경을 쓸 경황이 없다. 또 군부를 포함한 중국 공산당 대다수는 북한에 특정 정책을 강요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마디로 중국 지도자들은 현재 북한 문제를 '불안정하지만 용인할 만한' 상황이라고 느끼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북한문제의 열쇠는 중국이 쥐고 있다. 만일 중국 보수층이 어느날 갑자기 동아시아 국제 질서에서 북한체제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고 인식하게 된다면 얘기는 1백80도 달라진다. 그런 상황이 전개되면 서방측은 북한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때부터 북한문제는 중국이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리=최원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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