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總理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979년 정권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앉았던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는 공식 석상에서 얄미울 정도로 늠름하고 당당했다. 한치의 흔들림 없이 강성노조와 대치했고 필요할 때 경찰력을 동원해 파업 현장에서 그들을 몰아냈다.

대처가 너무 자신만만하게 국사를 처리했기 때문에 그에게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그 위에 피도 눈물도 없는 여인이라는 비판도 따랐다. 철저한 능률주의자여서 아기도 쌍둥이를 한꺼번에 낳았다는 지독한 야유까지 나돌았다. 영국이 여왕 지배하의 선진 유럽국가라고 하지만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의 틀 안에서 대처는 고군분투했다. 여성의 약점을 보여서는 안된다는 중압감에서 한밤중에 혼자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고 술회한 적이 있다.

대처는 75년 보수당의 첫 여성 당수로 뽑힌 이후에도 철야 의회에서 며칠 동안 꼬박 밤을 새우거나 의회 식당에서 가장 빨리 식사하고 심의 안건에 매달리는 노력가였다. 남성 정치인들과의 경쟁에서 그는 언제나 자신의 일에 열중했다. 어렸을 때 목욕실도 화장실도 없었던 집에서 강한 독립심으로 가난을 이겨낸 여성이었다.

서기 2000년을 전후해서 나타난 몇가지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는 여성들의 활발한 정계 진출이었다. 유럽·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그랬다. 여성의 참정권 운동이 21세기에는 사회 깊숙이 확산될 것이라는 미래학자들의 예측이 주목을 끌었다.방글라데시·파키스탄·스리랑카·인도네시아·필리핀·뉴질랜드 등의 여성 지도자들이 겪는 갈등과 권력욕은 좌·우파의 대립과 테러,여권의 회복을 요구하는 사회변화 등과 맞물려 새로운 시련을 불러왔다. 여성이라는 지위가 안고 있는 핸디캡도 컸다.

우리나라에서 여성 장관을 지냈던 사람들의 공통점은 재임 중에 여론이 집요하게 자질 시비를 걸어와 영원히 무능한 장관으로 만들어버렸다는 불만이었다.'여성 할당'이라는 배려 차원에서 입각한 데 대한 악의적 관심이라는 주장이다.

장상(張裳)국무총리 서리의 경우 행정경험이 전혀 없는 데다 여성이라는 이유를 들어 내각 장악력에 의문을 던지는 정가 반응도 나타나고 있다.'홍일점'이 대접받는 시기는 이미 지났다. 훌륭한 자질과 능력을 바탕으로 뱃심 좋은 여성 총리가 되도록 여론이 지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張서리는 무엇보다 장남의 국적과 병역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명과 함께 도덕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일이 앞서야 한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